‘쇼 미 더 머니’란 금빛 글자에 실린 무게 [이슈&톡]
2019. 09.30(월) 10:55
쇼 미 더 머니
쇼 미 더 머니
[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여덟번째 시즌까지 이어온 Mner ‘쇼 미 더 머니’는 외부의 어떤 틀과 억압에도 굴하지 않는 장르인 힙합을 주류들만의 세상이었던 방송 프로그램 안으로 끌고 들어오며 많은 이슈만큼 많은 인기와 사랑을 누렸다. 덕분에 재야에 묻혀 있던 힙합 아티스트들이 빛을 보았고 도전자로 참여했던 이들이 심사위원 격인 프로듀서로 재등장하는 선순환을 이루어내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현상이든 빛만 있긴 어려운 법. 사람들 사이에서 탄탄한 인지도를 쌓으며 몸집을 불린 ‘쇼 미 더 머니’는 언젠가부터 국내 힙합 시장의 괴물이 되기 시작했다. 무슨 소리인고 하니, ‘쇼 미 더 머니’가 래퍼들이 대중에게 이름을 알리는, 나름의 등용문 역할을 하기 시작하면서, ‘그를 통하지 않고서는’ ‘실력 있는’ 힙합 아티스트로 인정받기 어려워졌다는 거다.

여기서 우리가 몇 가지 짚고 넘어갈 바가 있는 데 우선 그 중 하나로 ‘실력 있는’에 관해서 이야기해보자. 초반에는 어느 정도 ‘실력’이 가진 본래의 의미에 충실했다. 오해하지 말 것은 지금은 그 의미가 달라졌다는, 실력과 상관없는 래퍼들이 양산되고 있다는 소리가 아니다. 정확히 말해 ‘실력 있는’의 본 뜻에,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혹은 ‘유명해질 수 있는’이란 의미들이 부가되었다 하겠다.

실력이 있으나 보여줄 판이 없었던 래퍼들을 대중의 시야 안으로 끌어와 인정을 받게 함은 물론 유명세를 선사하고 그들의 삶까지 윤택하게 만들었다는 점엔 박수를 보낸다. 그로 인해 아티스트들은 다음을 창작할 수 있게 되었고 대중은 질 좋은 힙합이 무언인지 알 수 있고 접할 수 있었다. 문제는 우리가 다음으로 짚어볼 바, ‘그를 통하지 않고서는’에 있다.

즉, 오늘의 래퍼들에게 ‘쇼 미 더 머니’가 명예와 부가 따라오는 성공을 위해서 반드시 통과해야 할 의례처럼 여겨지고 있다는 것. 그러나 ‘쇼 미 더 머니’의 평가 기준만으로 어떤 래퍼의 앞서고 뒷섬을 판단하기엔 적절치 않다. 이건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로, 하나의 시선만으로 평가를 지속하다가는, 웬만한 경각심을 세우지 않고서야 결국에는 편파적인 요소가 어느 정도 포함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얼마전 마무리지은 ‘쇼 미 더 머니 8’을 둘러싸고 일어난 ‘인맥힙합’ 논란은 이의 연장선 상에서 보는 게 옳다. 장르의 특성 상 힙합은, 독자적으로 활동하다가도 서로 음악적 취향이나 친분, 혹은 비즈니스적인 이유로 잘 맞는다 싶은 래퍼들끼리 서로의 크루가 되어 영향을 주고 받는 일이 부지기수로 일어난다. 인맥이란 개념 자체가 문제가 될 만한 영역이 아니라 할까.

그럼에도 ‘인맥힙합’이란 단어까지 등장하면서 사람들이 날선 비난을 쏟아낸 이유는, 어찌 되었든 경연의 방식을 취하여 실력을 평가하는 프로그램으로서 나름의 공정성을 기해야 할 텐데, 그의 혜택을 입을 아티스트들이나 혜택을 전할 프로듀서가 같은 소속일 경우가 많아진 까닭이다. 초반의 진정성은 어디다 잃어버린 채, 프로그램의 막강해진 입김에 기대어 자신의 식구들만 성공의 문턱으로 밀어올리는, 전혀 힙합답지 않은 모양새로 변질되어버린 것.

방송산업과의 연계는 그 취지가 무엇이든 언젠가 왜곡될 가능성을 품는다. 방송사는 이슈가 되어 돈을 끌어올 만한 프로그램을 선호하기 마련이라 명분이 얼마나 선하고 그 선한 명분이 얼마나 지속될 지는 상관하지 않으니까. 그러니 오래 이어가고 싶다면, 막바지에 다다른 게 아니고 싶다면, 제작진과 출연진이 앞장 서서 여덟 번이나 이어 온 ‘쇼 미 더 머니’의 금빛 글자에 실린 무게가 오늘의 힙합에 미치는 양가적 영향을 자각하여 그에 경각심을 가지고 재정비해야 할 터다.

[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news@tv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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