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 복서’ 잊혀지는 것에 대한 아련함 [씨네뷰]
2019. 10.02(수) 17:20
판소리 복서 엄태구
판소리 복서 엄태구
[티브이데일리 신상민 기자] ‘판소리 복서’는 독특한 소재를 가지고 코믹하게 풀어낸 작품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를 보는 내내 유쾌한 장면으로 웃음을 터트린다. 허나, 엔딩크레딧이 오를 때는 잊혀지는 것들에 대한 아련함을 느끼게 하는 묘한 영화다.(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판소리 복서’(감독 정혁기•제작 폴룩스 바른손)는 전직 프로복서 병구(엄태구)가 장구 장단에 맞춰 섀도우 복싱을 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병구는 박관장에게 45살에 세계챔피언 타이틀을 차지한 조지 포먼을 언급하면서 자신도 다시 복싱을 시작하고 싶다고 한다. 하지만 박관장은 그런 병구에게 허드렛일을 시킬 뿐이다.

민지(이혜리)는 다이어트를 위해서 체육관을 찾았다가 병구를 만나게 되고 그에게 호감을 느끼게 된다. 그러던 중 민지는 병구가 과거 판소리 복싱을 했다는 사실을 알고 그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준다.

영화는 코미디 장르에 충실하다. 판소리와 복싱이라는, 서로 다른 두 소재를 하나로 합쳐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장구 소리에 맞춰 주먹을 내지르는 병구의 모습에 웃음 절로 터진다. 더구나 병구와 민지가 서로 조심스럽게 마음을 표현하는 과정도 풋풋하면서도 코믹하게 그렸다. 때로는 만화 같은 설정이 관객을 폭소케 한다. 특히 병구가 줄넘기를 하는 장면에서 민지와 박관장의 모습은 만화의 한 장면처럼 느끼게 한다.

이렇게만 설명하면 ‘판소리 복서’는 코미디에 가까운 장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판소리 복서’는 희극보다는 비극에 가까운 이야기다. 과거의 실수로 최고의 자리에서 밑바닥까지 떨어진 병구는 재기의 꿈을 꾼다. 하지만 병구는 복서에게 치명적이라고 할 수 있는 펀치 드렁크라는 병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자신의 병을 숨긴 채 과거 친구 지연(이설)과의 약속 때문에 복싱, 그것도 판소리 복싱의 꿈을 놓치 못한다.

누구나 꿈 하나쯤은 품고 산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자신의 꿈을 펼치지 못한 채 마음에만 담고 살 뿐이다. 병구 역시도 현실적인 이유로 자신의 꿈을 펼치지 못한 채 마음에만 담고 있는 인물인 셈이다. 우여곡절 끝에 링 위에 오른 병구는 신명나게 판소리 복싱을 펼친 뒤 링 위에 쓰러져 박관장에게 “꿈을 꾼 것 같다”고 이야기를 한다. 이 순간 영화는 판소리 복싱을 완성하고 싶어하는 병구의 꿈이 이뤄진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병구의 상상인 것인지에 대한 판단을 관객에게 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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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치 드링크는 치매와 비슷한 증상을 보인다고 알려져 있다. 공교롭게도 영화의 주요 소재인 판소리와 복싱 역시도 서서히 기억이 사라지는 치매처럼 대중의 관심이 사라져 가고 있다. 판소리보다는 아이들 음악이, 복싱보다는 이종격투기가 각광받는 세상이다. 영화 상에서도 체육관을 다니는 어린 관원들이 이종격투기에 열광하는 모습이 나온다. 박관장에게 복싱 체육관을 팔라고 제안하는 장사장(최덕문) 역시 “시대가 바뀌었다”고 한다.

이처럼 영화 곳곳에는 서서히 잊혀지고 사라져 가는 것에 대한 아련함이 묻어 있다. 그렇기에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고 이야기하며 명창이 되고자 하는 지연이나 복싱에 꿈을 놓지 못하는 병구, 재개발 열풍에도 체육관을 지키려는 박관장의 모습에서, 잊혀져 가는 것을 지키려고 하는 이들의 모습이 더욱 더 애잔하게 느껴진다.

병구는 펀치 드렁크로 인해 복싱을 하는 것이 위험한 몸임에도 후회 없는 삶을 위해서 도전을 멈추지 않는다. 병구는 자신을 만류하는 민지에게 “어차피 모든 건 사라지고 잊혀진다”고 이야기를 한다. 복싱선수로 최고였던 병구는 한 순간의 실수로 추락하면서 모두에게 잊혀진 존재다. 누구나 잊혀지는 것에 대한 애틋함을 품고 있기에 후회 없는 삶을 위해서 무모한 도전을 하는 병구를 응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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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단편적이긴 하지만 유기견 문제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 병구는 동네에서 괴롭힘을 당하는 유기견을 데려와 복싱 선수 포먼의 이름을 붙여 준다. 병구는 다시 복싱 선수로 재기를 준비하면서 포먼과 함께 바닷가를 뛰는 등 훈련을 함께 한다. 하지만 유기견 생활을 했던 포먼은 결국 병구의 곁을 떠난다. 이를 통해 짧게나마 유기견 문제에 대해서도 감독은 언급을 한다.

‘판소리 복서’는 이색적인 웃긴 영화인줄만 알았는데 알고 보니 잊혀져 가는 것에 대한 아련함과 이루어질 수 없는 꿈에 대한 애틋함을 담은 영화다. 영화는 9일 개봉.

[티브이데일리 신상민 기자 news@tvdaily.co.kr / 사진=영화 ‘판소리 복서’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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