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은 지옥이다’, 서문조가 되지 않기 위해 [이슈&톡]
2019. 10.04(금) 09:14
타인은 지옥이다 이동욱
타인은 지옥이다 이동욱
[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에덴 고시원, 이곳에서의 살인은 더 이상 죄나 악이 아니며 그저 자신의 본능에 충실하여 벌어지는 하나의 오락일 뿐. 죽어가는 이의 고통 또한 중요치 않다. 그 순간 느끼는 나의 쾌감이 더 중요하다. 그리하여 나 외의 타인은 지옥이 되어도 되는 곳, 실질적 주인인 탐미주의 살인마 서문조와 지독히 닮아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사람이 모인 곳이라면, 그것도 지극히 악한 본성에 기대어 모인 곳이라면 지배 욕구가 강한 리더가 존재하기 마련, OCN ‘타인은 지옥이다’(연출 이창희, 극본 정이도)의 배경이 되는 에덴 고시원의 살인마들에게도 자신들의 살인을 진두지휘하는 리더가 존재한다. 선량한 얼굴과 상냥한 미소, 나긋나긋한 말투 뒤로 섬뜩한 얼굴을 가진 치과의사 서문조(이동욱)다. 살인을 해체하고 조립하고 재창조하는, 하나의 예술로 표현하는 이 탐미주의 살인마는 타인의 고통에 일말의 죄책감도, 연민도, 후회도 없다.

“내가 이렇게 돌발행동은 잘 안 하는데 종우씨가 나한테 특별하니까”

허나 흥미롭게도, 주인공 윤종우(임시완)에게만큼은 특별한 대우를 보이는데 고시원 내의 살인마들이 그를 향해 살인 욕구를 표출할 때마다 제어하는 것은 물론, 그럼에도 돌발행동을 하려 하자 죽이기까지 한다. 덕분에 종우는 입주하는 족족 실종되어(죽어) 나가는 에덴 고시원에서 여전히 목숨을 연명 중이다. 문조에게 종우가 이토록 각별한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가 여러 작품에서 접한 바와 같이 문조와 같은 사이코패스이자 소시오패스의 성향을 지닌 살인마는 자신을 알아줄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 스스로 특출 나다 생각하는 본인의 지성, 예술성, 창조성 등을 알아보고 동조하거나 증명할 사람, 혹은 두려워하다 못해 경외할 사람을 원하는 것. 그러한 까닭에 그들의 살인은 감히 상상도 못할 만큼 잔혹하고 끔찍하게, 비인간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곤 한다.

와중에 나타난 종우는 뛰어난 자의식을 지닌 것도, 내면 깊숙한 곳에 우월감을 비롯하여 폭력적 성향, 살인 욕구 등 악을 품고 있는 느낌도 문조와 닮아 있다. 단지 종우는 소설이란 허구의 행위로, 문조는 실제적 행위로 표출했을 뿐. 이는 서로 동일하게 좋아하는 추리소설을 이야기하는 장면을 시작으로 순간순간 종우의 마음을 읽어내리듯 말하는 문조의 대사에서, 그의 영향을 받아 점점 자제력을 잃고 내재된 악을 드러내는 종우의 모습에서 잘 나타난다.

여기서 짚고 넘어갈 바는 닮아 있는 것이지 종우가 문조가 될 순 없다는 점이다. 문조가 내면의 악이 발현된 자신의 모습에 희열을 넘어 우월감을 가지는 반면 종우는 괴로워하고 두려워하며, 숨겨져 있던 본인의 잔악한 면모를 자극하는 문조에게 공포심마저 느낀다. 뿐만 아니라 과거 자신이 군대에서 저지른 폭행 사건에 대해서 오랜 죄책감을 품고 있고, 타인의 고통으로 짓이겨진 고기를 먹을 때의 역겨움을 안다는 점 등은 문조가 가지지 못한 ’인간미’로 종우를 그에게서 구별짓는 큰 차이가 된다.

살인을 예술로 승화시킬 줄 아는 데다 인간미까지 갖추고 있다니, 종우는 문조에게 간만에 짜릿한 긴장감을 갖게 하는 흥미로운 대상으로, 특별한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는 거다. 결국 이제 드라마에서 본격적으로 펼쳐질 싸움은 종우의 인간미가 들추어진 자신의 악한 본성을 이겨내어 문조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는 것이리라.

상당히 불리한 상황이긴 하다. 문조의 영향력은 에덴 고시원 뿐만 아니라 종우의 주변에도 가득하여 내재된 폭력성을 가득 돋우고 있으니까. 그나마 다행인 사실은 종우의 자의식이 생각보다 강하여 서문조가 되지 않기 위해 어떻게든 인간미를 꽉 쥐고 있다는 것. 이것은 문조와 에덴 고시원의 완벽한 살인사(史)에 분명한 변수로 작용하여, 문조가 덮고 있는 에덴의 베일을 걷어 올리고 그 안에 담긴 지옥을 드러내어 심판을 받게 할 터다.

[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news@tvdaily.co.kr / 사진=O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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