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효진의 강단 [스타공감]
2019. 10.05(토) 15:43
동백꽃 필 무렵 공효진 강하늘 오정세 손담비 염혜란 고두심 김선영 이정은 주군의 태양 공블리
동백꽃 필 무렵 공효진 강하늘 오정세 손담비 염혜란 고두심 김선영 이정은 주군의 태양 공블리
[티브이데일리 이기은 기자] 멜로의 여왕 ‘공블리’(공효진+lovely)로 자리매김한 배우 공효진의 데뷔작 ‘여고괴담2’(1999)를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다. 말괄량이 쇼트커트와 예민하고 히스테릭한 외양은 당시의 그를 충무로 개성파 신예쯤으로 국한했기 때문이다.

김태희, 송혜교, 손예진, 전지현 등 서구적 면모를 지닌 여배우들이 CF를 섭렵하는 세기말을 지나 공효진은 자신에게 주어진 ‘예쁘지 않은’ 역할들을 받아들였다. 공교롭게 20대의 왕성한 혈기로 말미암아 그는 모든 작업현장을 신명나게 소화하며 연기실력을 체화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뼈가 걸어 다니는 듯 뾰족한 관절, 주근깨와 양갈래 머리가 잘 어울리는 개구진 이목구비는 결과적으로 공효진의 멜로퀸 타이틀에 효력을 더했다. ‘눈사람’ ‘상두야 학교 가자’ ‘고맙습니다’ ‘건빵선생과 별사탕’ ‘파스타’ ‘주군의 태양’의 공효진은 틀에 박힌 여주인공의 청순하고 티 없는 외피에서 벗어나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멜로드라마의 주시청층이 여성임을 감안할 때, 좋아하는 상대방 앞에서 촌스럽게 무너지며 눈물콧물을 쏟기 예사인 곰 같은 여자주인공은 브라운관 감정이입을 이끌 수 있다. 공효진은 그렇게 공감백배의 틈새시장을 확보한다. 동시에 한국 로맨스시장은 공효진이라는 친근한 여성 표상에게 영구적 캐릭터 빚을 지게 됐다.

때마침 탄생한 ‘미쓰 홍당무’(2008)는 공효진의 멜로 역사를 총망라한 결집체였다. 두껍고 투박한 코트를 좀처럼 벗지 않는 양미숙(공효진)은 365일 안면홍조증에 시달린다. 볼 빨간 미숙은 낯 뜨거운 실수를 연발하면서도 짝사랑하는 남자의 곁을 서성이는, 클래식 캐릭터 ‘미저리’의 판본이었다.

티브이데일리 포토


하지만 시간은 양미숙의 달아오른 얼굴을 회한 드리운 그늘로 변모시켰다. 이제 자신의 상태조차 엄혹하게 검열하는 여자는 불나방처럼 달려드는 남자의 구원을 믿지 않는다. KBS2 수목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극본 임상춘·연출 차영훈)에서 술장사를 하는 미혼모 동백(공효진)은 순한 심성을 지녔지만 차가운 세계의 현실을 담담하게 관조하는 인물이다.

동백은 자신을 따라다니며 “동백 씨 예쁜 거는 빼박이구먼유”라는 고백을 일삼는 순애보 총각 용식(강하늘)의 마음이 언제든 변하리라는 사실을 안다. 그만큼 배우 공효진은 드라마의 로맨스 정서와 별개로 용식과 애먼 거리를 두는 강단 있고 쓸쓸한 생활연기를 견지한다.

극중 배경 옹주시의 토속적 어감마냥 ‘동백꽃 필 무렵’은 여성을 향한 익숙하고 고정된 사회 시선을 신랄하게 묘사하는 드라마다. 옹주시의 모든 총각과 유부남이 술집 주인 동백의 가녀린 몸매를 흘긋거리고 부인들이 이내 동백을 찾아가 패악을 부리는 가운데, 선거 공천을 노리는 젊은 동네 유지 노규태(오정세)는 서릿발 같은 변호사 아내 홍자영(염혜란)의 그림자만 봐도 성욕이 달아난다.

이 와중 공효진은 세월이 빚어낸 동백의 단정한 내공을 세심하게 캐치해낸다. 가령 술김에 손목이라도 한 번 잡아보려는 규태에게 “저는 술을 팔뿐이지 손목과 웃음을 파는 건 아니”라고 명시하는 동백의 사리분별력은, 전쟁 같은 드라마와 영화판을 맹렬한 기세로 뚫어온 공효진의 커리어 현실과 오버랩되는 대목일 것이다. 실제로 공효진은 ‘미씽: 사라진 여자’(2016)에서 사각지대의 여성 한매 역할을 소화해내며 “아무에게도 도움 받을 수 없는 한매의 원통함은 내게도 일어날 수 있다”(무비토크 V라이브)는 연대적인 위기감을 고백하기도 했다.

40대 공효진은 여전히 청춘멜로극 러브콜을 받는다. 그러나 몇 안 되는 톱급 여배우로 살아가는 그에게 작품 조율권이나 현장 노동권은 여전히 중견 남자 배우들에 비해 편치 않은 영역일 것이다. 그러니 얼핏 이 배우의 대표 영예로 간주되는 ‘공블리’는, 공효진이 여성노동자들 중 상위 프로페셔널이기에 가까스로 착용할 수 있었던 무도회 가면으로 보인다. 공효진의 어떤 알맹이는 아직 완전한 베일을 벗지 않았다.

티브이데일리 포토


[티브이데일리 이기은 기자 news@tvdaily.co.kr / 사진=신정헌 기자, SBS, MBC, KBS, 팬엔터테인먼트, 영화 스틸컷]
기사제보 news@tvdaily.co.kr        이기은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키워드 : 강하늘 | 공효진 | 동백꽃 필 무렵
싸이월드공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