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본드’, 고민은 없고 설정만 존재하는 블록버스터 [이슈&톡]
2019. 10.08(화)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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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세계적인 방위산업체라 불리는 곳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무려 211명의 사람들이 탄 비행기를 고장으로 위장하여 추락시킨다. 거짓에 완벽히 눌린 듯 보여도 진실은 사라지거나 가라앉지 않는 법, 한 꼬마가 삼촌에게 남긴 영상 하나가 통로가 되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이승기와 배수지가 만난 블록버스터 ‘배가본드’의 이야기로, 몇 해 전 우리의 마음을 무력한 고통 속으로 몰아 넣었던 어느 국가적 참사를 떠오르게 한다.

SBS ‘배가본드’(연출 유인식 극본 장영철, 정경순)의 특징이라 할 만한 설정은, 단순히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유가족의 슬픔을 담아내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이 슬픔을 은폐된 진실을 파헤치는 동력으로 삼는다는 데 있다는 것이다. 주인공 차달건(이승기)이 그러하다. 자신의 꿈과도 바꿔가며 금이야 옥이야 키운 조카가 비행기 추락사로 죽고 나서, 그의 온 삶은 비행기 사고의 이면에 있는 진실을 파헤치는 데 쏟아부어지기 시작했으니까.

‘배가본드’에 실리는 책임감은 여기서 비롯된다. 실은 국가의 주도로 이루어져야 했을 원인 파악을 슬픔을 감당하기도 벅찬 유가족이 해나간다는 이야기를 통해, 심지어 무능력한 정부기관을 일깨우며 함께 진실을 밝혀 나간다는 이야기를 통해, 국가와 정부의 존재 가치를 되묻는 것. 다시는 이러한 말도 안 되는 사고로 소중한 생명을 잃는 일이 없도록 경각심을 불러 일으켜야 한다는 것.

한 마디로 그저 화제성을 불러 일으킬 소재로만 활용되어선 안 된다는 거다. 하지만 몇 백 억의 예산이 들어갔다는 이 작품에는 안타깝게도, 설정과 사건만 있을 뿐 어떤 의미도, 주제도 발견할 수 없다. 어쭙잖은 로맨스만 존재할 뿐. 그러다 보니 소재가 소재인 만큼 애를 쓰며 연기 중인 배우들의 노력이 무색할 정도로 소재가 지닌 무게감은 드라마에 온전히 실리지 못하고, 시청자들은 이야기에 몰입하는 게 쉽지 않다. 등장 인물들의 감정에 몰입하기 힘들다.

실제 사건과 연결되어 드라마에 나름의 현실감을 부여했을지 모를, 접대 장면이 대표적인 예다. 앞서 비행기를 추락시킨 주범인 존엔마크사의 제시카(문정희)는 국방부 장관을 옥죄기 위해 그의 측근들을 초대하여 성접대를 벌이는데 ‘배가본드’는 이를 화면에 모자이크를 넣어 보는 이들의 상상력을 극대화하는 방식을 취하며 다소 높은 수위로 표현했다. 방영 이후 많은 사람들이 ‘자극적’이라며 비판을 가한 건 당연지사.

어쩌면 해당 사건을 연상시키기에는 더없이 좋은 방법이었을지 모르나, 문제는 주제가 실종된 드라마가 이를 받아내기엔 역부족인지라 시청자들에겐 하릴없이 과한 표현이 되어 자극적인 소감만 남기게 하고 말았다는 데 있다. 설정만 존재하고 설정을 위한 어떤 고민도 수반하지 않은 드라마가 지니기 마련인 특성으로 설상가상으로 드라마 밑바닥에 깔려 있던 여성을 향한, 여전히 상투적인 인식까지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중이다.

이쯤 되니 이야기의 모티브가 되는 사건에 대한 제대로 된 인식이 있었는지 혹 화제성만 가지고 온 건 아닌지, ‘배가본드’의 책임의식에 의문이 들 수밖에. 연기력의 좋고 나쁨 떠나 작품이 채 실어내지 못한 무게감과 사명감을 가지고 각양각색의 자리에서 심혈을 기울여 연기를 펼치고 있는 배우들의 노력이 아깝고 또 아까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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