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죽음의 손에 노출된 스타들 [이슈&톡]
2019. 10.15(화) 09:58
설리
설리
[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미움받을 용기’란 책이 얼마 전까지 세간의 화제였던 걸 보면, 우리는 모두 누군가로부터 미움을 받는 일을 어지간히 두려워한다. 나를 미워하고 저주하는 사람이 주변에 하나만 생겨도 밤잠을 못 이룰 정도로 고통스러워하며 죽일 듯한 분노로 되받아치기도 하는 것이다.

스타라고 다르랴. 혹자는 비난을 받아내는 일도 스타의 값에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하지만 비난과 비판은 엄연히 다르며, 무엇보다 스타이기 이전에 우리와 동등하게, 이 세계에서 행복하게 살아갈 자격을 갖춘 사람이란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즉, 스타라고 해서 누구라도 고통스러울 상황을 당연시해야할 명분이 되진 못한다는 것이다.

스타는 대중에게 받은 사랑이란 가치를 물질로 환산하여 생을 꾸려 간다. 하지만 그 대가(代價)적 사랑에는, 손님이 낸 술값에 여주인의 손목값이나 웃음값은 안 들어간다는 어느 드라마 속 말마따나, 무차별 공격이나 마찬가지인 악성 루머나 댓글의 값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럼에도 숙명인 마냥 혹은 인기의 척도인 마냥 스타들은 지속적으로 악의적 비난에 시달리고 있는 게 오늘의 현실이다.

와중 한 가지 위로라면, 제대로 된 대응조차 하지 못하는 예전과 달리 오늘의 스타들은 그래도 어느 정도 강력하다 여겨지는 조치를 취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조치들이 죽음을 불러오는 손가락들을 완전히 멈추게 하여 그의 영향력으로부터 해당 스타들을 완벽히 보호해주진 못한다. 그저 이미 벌어진 상처투성이 상황에 대한 처벌만 가능할 뿐으로, 또 다른 비난의 글들을 막는 예방 차원의 역할이라도 해주길 바라는 수밖에.

사실 더 큰 문제는, 많은 사람들의 시선 속에 놓이는 직업의 특성 상 스타의 대부분이 우울증을 앓을 가능성이 높다는 데 있다. 인지적 관점에서 우울증은 나 자신과 나의 세계, 나의 미래를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과정에 있어서 왜곡이 발생할 때 찾아오는 것으로, 매순간 자신의 본 모습과 만들어진 이미지 사이에서, 현실과 허구 사이에서 쉼 없이 괴리감을 느껴야 하는 스타들은, 안타깝게도 가장 적합한 타깃이 된다.

알다시피 우울증은 단순한 감정의 기복을 의미하지 않는다. 뇌의 어느 부분이 정상적으로 기능하지 못하는 상태로, 안그래도 왜곡되어 있는 감정이 외부에서 들어오는 비난이나 부정의 말로 더 악화될 수 있다. 그리고 심각한 경우엔 자살로 이어진다. 사람이 자신의 생명을 끊는 일은 뇌가 마비되지 않고서는 절대 행해질 수 없는 것으로, 우울증이 무서운 이유가 여기서 비롯된다.

아역배우로 시작하여 아이돌 가수, 배우로, 살아온 생의 거의 대부분을 대중에게 스타로 존재해온 설리가 세상을 떠났다. 아직 꽃다운 나이의 그녀를 죽음으로 내몬 게 무엇일가 생각하니, 대중의 하나로서 어떤 말도, 반응도 쉽게 나오지 않는다. 소비되는 상품으로 남지 않기 위해 부여된 이미지를 깨고 나왔더니 돌아온 건 대중의 냉혹한 거부반응 뿐. 말썽쟁의 것으로만 여겨졌던 그녀의 목소리와 몸짓은 하나의 간절함이었을지 모르겠다.

만들어진 이미지와 본 모습 사이에서 그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이며 살고 싶었을 그녀에게, 스타라는 이유로 쏟아지는 수많은 날선 시선과 말들은 마음을 짓눌러 뇌를 고장나게 하는 무서운 족쇄이지 않았을까. 한 두 명에게 미움을 받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닌데 불특정 다수에게 자신의 모습을 거부당하는 일은 더더욱 고통스러웠을 터.

스타를 대하는 대중의 인식이나 태도에 성숙한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무차별적이고 분별력 없는 비난은 악의로만 가득 차 그 어떤 변화도 일으키지 못함은 물론 누군가를 죽음으로 몰아갈 수도 있음을 항상 기억해야 하겠다. 스타의 삶이 지닌 화려함 뒤에 숨겨진 비극성을 단편적으로 드러낸 설리의 마지막 순간이, 조금은 평안했기를, 눈을 감는 순간만큼은 조금이나마 가벼웠기를 죄책감 어린 마음으로 바라 본다. 삼가 고인이 명복을 빈다

[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news@tv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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