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리의 죽음, 책임 전가가 필요한 사람들 [이슈&톡]
2019. 10.15(화)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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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브이데일리 김지현 기자] 그녀는 참 특별했다. 갑작스럽게 삶의 끈을 놓아버린 고인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남기는 말이 아니다. 25세를 일기로 짧은 생을 마감한 고(故) 최진리. 대형 기획사의 시스템 안에서 태어났지만 여느 아이돌과 달랐던 그녀, 비록 짧았지만 불꽃같은 생을 살았다.

설리는 늘 예상과는 반대로 움직였다. 한때 그의 소속사는 통제가 되지 않는 고인의 자유분방함에 어쩔 줄 몰라 했다. 세상에 이런 걸그룹 멤버는, 이런 아이돌은 처음이라며 모두 놀라워했다. 늘 예쁘게, 착하게 보여져야 하는 걸그룹들 사이에서 설리는 둘 도 없는 돌연변이로 비춰졌다. SNS 역시 동료들의 그것들과 차원이 달랐다. 때로는 그로데스크했고, 때로는 터부시 되는 것들을 넘어섰다. 그렇게 설리는 악동이 되어가는 듯 했다.

“구차한 설명 따위 일체 달지 않고 계속 사진을 올리는 설 리가 세상에서 제일 멋있다“

고인의 절친이었던 배우 김의성의 말은 적중했다. 대중은 어느 순간 설리의 독특한 개성을 받아들였다. 타인의 시선을 아랑곳 않고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 설리는 표현을 구속받은 한국 청년들의 지지를 얻으며 하나의 아이콘이 돼 갔다. 업계도 대체 불가능한 캐릭터인 설리의 탄생을 반가워했다. 유명 감독과 스타 배우들이 러브콜을 보냈다. 하지만 설리는 이 때도 사람들의 예상을 뒤엎었다. 원하는 작품에만 출연하며 쉬엄쉬엄 필모를 쌓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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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에 우리가 설리를 얘기할 때 참고할 수 있는 가장 긴밀한 도구는 결국 고인의 SNS다. 이 세계 안에서 설리는 제 이름을 고유명사로 명명할 수 있을 정도로 확고한 자신만의 캐릭터를 완성해갔다. 기획이나, 자본의 산물이 아닌 설리 스스로가 만든 것이기에 더욱 특별했다. 보수적인 한국 연예계에서 트러블 메이커 이미지로 명품 브랜드의 협찬을 줄 서게 만드는 힘. 전례를 찾을 수 없는 일이다.

혹자들은 설리의 죽음을 악플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꼭 그녀의 죽음이 악플에만 기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어린 시절 데뷔해 홀로 견뎌야 했던 직업적 무게, 소소하고, 무의미한 행동에도 쏟아지는 큰 해석들이 무거운 짐으로 다가왔을 지도 모른다. 감히 가늠할 수 없는 지극히 개인적인 아픔과 무게들이 그녀를 짓눌렀을 것이리라.

어쩌면 ‘모든 게 악플 탓’이라는 불특정 다수를 향한 이 해석은 설리를 기괴하게 바라보고 손가락질 했던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편리한 책임 전가가 아닐까. 설리는 마냥 약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사람들이 이 편리한 책임 전가는 설리가 사망한 이튿날에도 계속되고 있다. 빈소를 공개한 한 기자의 신상을 마구잡이로 털고,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악플을 달고 있다. 설리의 죽음에 ‘악플’ 운운하며 자성의 목소리가 제기되기 하루도 지나지 않아 벌어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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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리가 ‘악플의 밤’ MC를 맡았을 때 두 가지 생각이 일었다. 하나는 누가 뭐래도 제 하고픈 대로 행동하는 설리가 제 입으로 제 악플을 읽어도 견딜 수 있을 만큼 강할 것이라는 생각, 또 하나는 그렇게 악플에 신경 쓰지 않을 것 같은 설리와 어울리지 않는 자리라는 생각.

그런데 이 예능에서 설리가 남긴 말이 의미심장하다.

“실제 내 생활은 구렁텅이인데 바깥에서는 밝은 척 하는 게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하는 기분이다. 조언을 많이 구했다. ‘어떤 사람이라도 어두운 부분이 있지만 안 그런 척 하고 사는 거다.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아라’고 하길래 그냥 양면성 있게 살아가고 있다.”

구렁텅이. 밝은 척. 원하는대로 사는 것처럼 보였던 설리의 입에서 나온 단어는 의외의 것이었다. 한국의 걸그룹 멤버들은 유난히 높은 도덕성 잣대를 강요받는다. ‘어느 곳에서나 356일 웃어줘야 하는’ 착함을 교육 받고, 그 안에서 실제의 자신을 고민한다. 설리는 어땠을까. 그 반대 급부를 강요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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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우리는 설리에게 늘 솔직해야 하고, 자유로워야 하며, 독특해야 하고, 아무 생각 없이 밝아야 한다고 강요한 것은 아닐까. 그녀에게 제 자신의 전부가 아닌 일부였을 뿐인 SNS 캐릭터와 이미지를 강요한 것이 아닐까. 그 안에서 쌓여가는 이미지가 혹 부담으로 작용한 것은 아닐런지. 고인 역시 본질적으로 동료들과 같은 고민을 했건만, 홀로 아파한 것 같아 안타깝다.

물론 그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중요한 건 우리가 특별한 존재를 잃었다는 것이다.

남 모를 속앓이에 깊은 우울증에 빠진 설리는 노트에 무슨 말을 남긴 것일까. 아니, 궁금해 하지 않는 게 고인을 위한 도리일 것 이다. 손짓 하나에도 떠들썩한 반응을 보였던 우리가 설리에게 보여줄 수 있는 마지막 최선은 ‘당신은 누구보다 특별했고, 그래서 아름다웠노라’고 얘기해주는 것이다. 지금 누군가를 탓 하는 것 보다 중요한 일은 설리를 추억하며 경건히 보내는 일이다.

[티브이데일리 김지현 기자 news@tvdaily.co.kr /사진=DB, 설리 S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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