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계수 감독, 버티고 버티는 이들 위한 위로 [인터뷰]
2019. 10.16(수)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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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브이데일리 신상민 기자] 전계수 감독은 일본에서 3년간 직장생활을 하면서 느낀 바를 영화 ‘버티고’에 담아냈다. 막 30대에 접어든 시기, 직장 내 유일한 한국인이라는 외로움, 현실과 꿈 사이에서 고뇌까지. 전 감독은 너무 많은 것들이 자신을 짓눌렀던 시기를 서영이라는 인물에 투영했다.

전계수 감독에게 3년간의 직장생활은 자신의 자아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버티는 시기이었다. 영화를 하고 싶다는 꿈을 품고 있음에도 전 감독의 현실은 매일 막차를 타고 퇴근을 하며 돈을 벌어야 했다. 더구나 시기적으로 밀레니엄의 경계에서 막 30대에 접어들었던 터.

꿈을 위해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것이 맞는지, 영화를 해서 밥을 먹고 살 수 있을지 고민할 수 밖에 없었다. 지금의 30대와 달리 당시 30대만 해도 자신이 선택한 길에 책임을 지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나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전 감독은 더 이상 아이가 아니라고 강요하는 세상의 인식 속에서도 자신이 아직 인생을 책임질 만큼 성숙하지 않은 것 같은 불안감을 느꼈다.

영화 ‘버티고’(감독 전계수•영화사 도로시)에서 서영은 30대 여성 직장인이지만 계약직이기에 느끼는 불안감, 비밀 연애, 복잡한 가족사까지 다양한 문제로 하루 하루 위태롭게 버티는 인물이다. 전 감독이 30대때 느낀 것처럼 서영은 사회에서 너무 많은 것을 강요 받는다. 그렇기에 서영은 전계수 감독의 30대의 모습이자 현재 하루 하루를 위태롭게 버티고 있는 30대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전 감독은 서영에게 직장 문제, 애정 문제, 가족 문제를 짊어지게 했다. 하나의 문제만으로도 삶이 고달플 법한데 전 감독은 서영에게 너무 많은 문제를 던져준 셈이다. 이에 대해 전 감독은 서영이라는 인물이 30대라면 누구라도 공감할 만한 인물이 되기를 바랐기 때문이라고 했다. 직장 내에서 실력을 증명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시기, 결혼에 대한 고민이 가장 많은 나이, 예전과 달리 좁아진 부모의 어깨를 느끼게 될 때가 바로 30대다. 그렇기에 이러한 모든 고민을 짊어진 서영은 30대라면 성별을 떠나서 공감을 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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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상사인 진수(유태오)와 사내 비밀 연애 중인 서영, 이를 고층 빌딩 창문 밖에서 지켜보는 관우(정재광). 이렇게만 보면 전형적인 멜로 영화의 분위기를 풍긴다. 더구나 영화 역시도 멜로를 표방하고 있다. 그러나 전 감독은 자신이 말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기에 가장 적합한 장르가 멜로라는 장르였을 뿐이라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관객들이 영화 말미의 서영과 관우의 키스 장면을 단순히 표면적으로만 보지 않기를 바랐다. 서영은 극단으로 치닫는 주변 상황에 더 이상 버틸 힘을 잃게 된다. 그 순간 손을 내민 인물이 관우다. 전 감독은 손을 내민 관우가 서영을 구원하는 상징적인 인물이지만 동시에 아픔이 있는 관우 역시도 서영에게 손을 내밀어 스스로를 구원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영화는 관우의 아픈 과거를 자세하게 다루지 않는다. 과거 관우가 부사관이었던 것, 그의 누나가 BJ로 돈을 벌며 카페를 차릴 꿈에 부풀었다는 것, 현재 누나가 세상을 떠났다는 게 전부다. 관우의 누나가 왜 죽었는지에 대해 자세히 등장하지 않는다. 오로지 관객 스스로가 상상으로 채워 넣어야만 한다. 전 감독은 이 부분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고 했다. 마지막 장면에서 손을 내밀고 손을 잡아 구원이 합쳐지는 느낌으로 읽혀지기 위해서 관우의 슬픈 과거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 감독은 초기 시나리오에서 각색을 하는 과정에서 그리고 촬영을 하면서도, 편집을 하면서도 세 인물의 과거 이야기를 많이 들어냈다고 했다. 전 감독은 서영과 친부의 에피소드, 진수와 전 부인의 언쟁, 관우의 누나가 어떻게 죽는지에 대해 찍어 놓고도 뺀 것도 있었다고 했다. 전 감독은 영화의 리듬을 잡아갈 때 관우의 과거사가 너무 강렬해 자칫 서영의 감정선을 따라 흐르는 이야기가 관우에게로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과거사를 설명하다 보면 서영이라는 인물이 느끼는 감정이 규정돼 뻔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전 감독은 “현대인이 가진 마음의 병은 본인도 모른다. 특별히 불행하지 않음에도 알 수 없는 불안감과 우울감을 느낀다”고 했다. 그렇기에 과거 이야기를 통해 인물이 느낄 감정을 명확하게 규정짓기 보다는 알 수 없는 불안함으로 느끼게 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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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티고’의 독특함은 총 17개의 날과 날이 바뀔 때마다 날씨예보가 자막으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태풍이 불기도 하고 답답할 만큼 흐린 날도, 화창한 날씨도 등장한다. 전 감독은 서사를 통해 긴장감을 만드는 영화가 아니다 보니 날씨예보라는 장치를 통해 관객이 서영의 감정선을 쫓기를 바랐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 상 날씨 예보는 서영의 상태를 알려주는 복선과 같은 역할을 한다.

영화 속 시기는 9월에서 11월쯤이다. 전 감독은 서영이 하나의 계절을 뚫고 지나가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고 했다. 그렇기에 끔찍했던 하나의 계절이 지나가고 새로운 계절이 온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다고 했다. 전 감독은 “삶은 지속되니까 버티고 살아가는 것이다. 과거의 일을 과거의 위치에 두고 현재를 새롭게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렇기에 영화의 마지막 장면 역시도 일몰을 배경으로 했다고 말했다. 하루가 지나고 새로운 하루가 온다는 상징적인 일몰을 통해 힘든 시기를 버틴 서영에게 새로운 시기를 맞게 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고 했다.

전 감독은 시각적, 청각적, 그리고 플롯의 리듬, 날씨 자막 등을 뭉뚱그려 서영의 감정을 전달했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서사적인 설명만을 요구한 채 기존에 영화를 보는 방식으로 ‘버티고’를 보게 된다면 114분 내내 관객은 영화에 몰입하지 못한 채 버티고만 있게 될 뿐이다. 전 감독은 “사실 감독들은 이런 부분을 알아채지 못해도 상관 없다는 태도로 만든다. 의미를 발견해주면 감사할 따름이다”고 했다.

그렇기에 전 감독은 ‘버티고’를 감각과 감정에 집중해서 봐달라고 했다. 보편적인 스타일이 아니기에 새로운 수용 방식이 아니라면 실망할 수 있다고 했다. 무모한 시도이긴 하지만 관객을 고문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서영의 감정에 깊이 들어와 감각이 왜곡되거나 상실되는 감정적인 부분을 따라가길 바란다고 했다.

아무리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이라도 외부적으로, 혹은 심적으로 위태로운 순간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이때 자신이 느낀 정신적 현기증, 그리고 그 순간 누군가 손을 잡아줬으면 하는 절실함. 전 감독은 ‘버티고’의 서영을 통해 이러한 감정을 느끼는 버티고 버티는 이들, 혹은 버텨냈던 이들을 위로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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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브이데일리 신상민 기자 news@tvdaily.co.kr / 사진제공=트리플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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