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고’ 버틴 끝에 다가온 위로 [씨네뷰]
2019. 10.16(수) 17:07
버티고
버티고
[티브이데일리 신상민 기자] 영화 ‘버티고’의 첫 인상은 밋밋하다. 서사로 이야기를 끌고 가는 영화가 아닌 극 중 인물의 감정선을 따라 가다 보니 여기저기 헐겁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극 중 서영(천우희)이 버티듯 관객도 버티며 서영의 감정을 쫓다 보면 슬며시 다가온 위로의 손길이 느껴지는 묘한 영화다.

영화 ‘버티고’(감독 전계수•제작 영화사 도로시)는 독특하고 생동감 있는 캐릭터들의 연애 담을 그려낸 ‘러브 픽션’을 연출한 전계수 감독의 신작이다. ‘버티고’를 ‘러브 픽션’과 같은 분위기라고 생각한 관객이라면 영화의 제목처럼 러닝타임 114분 내내 지루함을 버텨내야 한다. 그만큼 ‘버티고’는 전계수 감독의 전작과는 결이 많이 다르다.

사내에서 인기 많고 유능한 직장 상사 진수(유태오)와의 비밀 연애를 하는 서영은 동료들이 진수 이야기를 할 때 묘한 승리감에 찬 표정을 짓는다. 허나 이는 서영의 잠시뿐인 안정감이다. 회사의 재계약 때문에 불안한 서영은 복잡한 가정사로 인해 매일 밤 전화를 거는 엄마로 인해 극심한 피로감을 느낀다.

잠시나마 안정감을 준 진수는 일본 출장을 앞두고 서영에게 냉랭한 태도로 돌변한다. 이로 인해 위태롭게 일상을 버티는 서영은 무너지기 시작한다. 현기증이 심해지고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내몰린다. 그 순간 로프공 관우(정재광)가 서영에게 손을 내민다.

‘버티고’는 일본에서 3년간 직장생활을 한 전계수 감독이 느낀 자신의 감정을 서영에게 투영했다. 전계수 감독이 직접 경험한 일인 만큼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법한 회사의 모습이 영화 곳곳에 담겨 있다. 그렇기에 20대를 지나 30대를 맞이한 이들의 조바심과 불안감, 쉴 틈 없이 빠르게 돌아가는 회사 등 모든 것을 버티고 버텨야만 하는 감정이 서영을 통해 관객에게 전달된다.

특히 서영이 극한에 몰려 울 장소를 찾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눈물이 흐르지만 어디에서도 울 수 없는 서영은 결국 햇살 가득한 복도에 쪼그려 앉아 눈물을 터트린다. 그러나 복도 모퉁이를 돌면 업무로 분주한 이들이 있다. 너무나 현실적이기에 직장인이라면 공감할 수 밖에 없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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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서영의 감정선을 따라가지만 단순히 배우의 연기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시각적인 효과를 통해 서영의 감정을 강렬하게 전달한다. 전계수 감독은 서영이 현기증을 느낄 때마다 의도적으로 장면을 흔들리게 연출했다. 이로 인해 관객이 어지러움을 느낄 정도다. 이러한 장치를 통해 한발 떨어져 바라보던 관객을 서영의 감정에 한층 더 가까이 다가가게 한다.

또한 17번 자막으로 등장하는 일기예보 역시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다. 새로운 아침을 맞이할 때마다 자막으로 등장하는 일기예보는 서영의 감정을 예보하는 역할을 한다. 영화는 이러한 장치를 통해 영화가 가진 서사적 공백을 채워 넣었다.

차근차근 서영의 감정선을 따라 가다 보면 어느 순간 서영이 관우를 통해 위로를 받듯 관객 역시도 아련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서영이 버티고 버틴 끝에 관우에게 위로를 받듯 관객 역시 서영의 감정선을 따라 버티고 버텨내야만 서영이 받은 위로를 오롯이 느낄 수 있다. ‘버티고’는 오늘도 버티고 있을 이들을 위로하는 영화다.

영화는 16일 개봉.

[티브이데일리 신상민 기자 news@tvdaily.co.kr / 사진=영화 ‘버티고’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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