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커’는 미화되지 않았다 [무비노트]
2019. 10.22(화) 14:08
조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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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영화 ‘조커’를 향한 우리의 오해가 있다면, 조커가 절대악의 상징이 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에 이해하고 동조하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영화의 어느 부분에서도 조커를 위한 동정 여론을 형성할 만한 꺼리는 없다. 물론 후에 조커가 되는 아서가 겪은 불우한 유년기는 보는 이의 마음 한 구석을 무겁게 하기 충분하나 그렇다고 여느 작품들처럼 그것을 악인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로 합리화하지 않는다.

‘다크나이트’의 조커(히스 레저)는 무르익은 절대악의 모습을 띤다. 철저한 성악설의 신봉자(스스로를 보아도)인 그는, 멀쩡한 척 선을 추구하는 척 스스로를 기만하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제 악한 본성을 마음껏 드러낼 만한 상황을 만들어 그들의 본성에 외친다. 자, 다른 사람을 죽이지 않으면 네가 죽어, 이겍 네가 직면하는 세계이고 네 안에 일어나는 갈등이 너의 진짜 모습이야, 라고. 이쯤 되면 조커는 어떤 특정 빌런이라기보다 악의 원형이다.

‘다크나이트’의,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다크나이트’ 속 ‘조커’의 프리퀄답게, 영화 ‘조커’는 조커(호아킨 피닉스)가 절대악으로 거듭나게 된 과정을 담아낸다. 아서 플렉(호아킨 피닉스), 조커가 되기 이전의 이름처럼 그는 낙후된 환경에서 병이 든 홀어머니를 모시고 광대 일을 하며 살아가는, 언젠가 코미디언이 될 날을 꿈꾸는 보통의 사람이다. 특이점이 있다면 정신적 장애를 꽤 심각하게 앓고 있고 이를 돌보아야 할 고담시가 보조를 끊었다는 것 뿐.

우리가 여기서 좀 더 주목해보아야 할 바는, 시민이 기본적으로 받아야 할 보조를 끊는 고담시의 상황이다. 인간의 내재된 악한 본성을 이야기한 ‘다크나이트’에서 좀 더 깊이 들어간 부분으로, 보통의 사람들이 스스로의 악함을 드러내며 범죄자가 되게 하는 동기가 무엇인지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양극화가 극심한 고담시의 세계는 부요한 자와 빈곤한 자의 경계가 명확하고 그 차이가 크며, 사회 구조가 부요한 자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 아서가 받아야 할 보조가 끊겼다는 게 대표적 예다.

이러한 세계가 으레 그렇듯 빈곤한 자는 불공평한 사회를 향한 분노와 설움이 쌓이고 풀 데가 없어 폭력을 일삼는 것으로 표출한다. 그것도 자신보다 더 약자에게. 약자가 자신이 겪은 대로 또 다른 약자를 짓밟는 사회, 여기서 가난한 데다 정신의 병까지 지닌 아서는 약자 중의 약자로 수없는 발길질과 농락을 당하는 게 당연지사. 흥미로운 점은 조커로 각성하기 전의 아서는 도리어 도덕적인 부분에서 상당히 민감한 인물로 그려지며 세계에 관한 인식도 미쳐 돌아간다는 표현을 쓸 정도로 정확하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자신의 본성 혹은 본래의 상태를 힘겹게 제어하며 미쳐 돌아가는 사람들 속에서도 미치지 않은 척 하며 ‘해피’하게 살아가려 하는 아서에게 정신을 치유할 보조까지 끊어버리는 고담시의 세계는 너무도 고약하고 고달프다. 숙명처럼 찾아온 하나의 계기가 그 안의 조커를 각성시킬 수밖에 없었다 할까. 가까스로 지켜온 선을 넘고 말았으나 이상하게 죄책감은 없고 오히려 자유롭고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을 만큼 강해진 자신을 느낀 아서는 더 이상 이전의 아서로 돌아갈 수 없다.

이제 조커의 분장을 하고 악의 원형으로 거듭난 아서에게 유년 시절 겪은 학대의 기억은 그저 내면의 악을 발산하는 하나의 명분이자 동력이 될 뿐이다. 보통의 사람인 척, 미치지 않은 척 살며 비극적인 삶을 어떻게든 헤쳐 나가보려 애써 온 그가 모든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워져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풀어내며 절대악의 자리에 오르는 것이다. 그러니 아서의 불우한 유년기가 그를 조커로 재탄생시켰다 할 수 없다.

영화 ‘조커’에서가장 중요한 맥락으로, 앞서 던진 화두인 보통의 사람들이 악인의 길로 들어서게 되는 동기와 연결된다. 무엇이 아서로 하여금 절대악이 되게 하고 고담시의 세계에 또아리를 틀게 했는가, 답은 부조리한 사회라는 것이다. 그저 치료가 필요한, 정신적으로 취약함을 겪고 있을 따름인 존재를 절대악으로 추앙받게 만들어 그를 하나의 명분이자 계기로 여기게 함으로써 보통의 사람들이 본연의 악함을 제어하지 못하고 범죄자가 되게 하는 비틀린 사회구조라는 것이다.

그렇다. ’조커’는 고담시의 세계가 탄생시킨 절대악이다. 영화는 ‘조커’의 어느 한 부분도 미화시키지 않고 이 과정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데 성공했다. 혹 그럼에도 미화된 것으로 느껴진다면, 어쩌면 슬프게도, 우리 또한 영화 속 고담시와 유사한 세계에서, 조커를 영웅으로 받드는 사람들의 마음에 공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맞닥뜨리며 살아가고 있다는 증명일지도 모르겠다.

[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news@tvdaily.co.kr / 사진=영화 ‘조커’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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