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어떻게 살았어?”…질문, 그 가치만으로 [‘82년생 김지영’ 씨네뷰]
2019. 10.29(화)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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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브이데일리 김지현 기자] 영화 ‘82년생 김지영’(감독 김도영, 제작 봄바람)은 화제성 만큼 만듦새가 뛰어난 영화는 아니다. 메시지를 던지는 방식이 다소 노골적인 탓이다. ‘첫 손님으로 여자는 받지 않는다’, ‘맘충’과 같은 대사를 지나치게 전면에 드러내 '여성=피해자'라는 뉘앙스를 강하게 풍긴다. 기자 역시 80년대 초반 태어나 자란 여성이지만, 2019년의 공기는 이 대사가 녹아들 수 있을 정도로 팍팍하진 않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 가치가 있는 건 질문을 던져주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래서 엄마는 어떻게 살았어?’라고 물었다. 자식을 키우기 위해 포기해야 했던 것들, 젊고 싱그럽던 시절 가졌던 꿈들, 시대가 좌절시킨 그 어떤 것들에 대한 질문 말이다. 남자주인공 공유 역시 시나리오를 읽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를 어떻게 키웠냐’고 물었다고 한다. 이 질문들은 이 영화의 모든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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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딸을 넘어 엄마, 할머니들의 이야기

‘82년생 김지영’은 세대를 초월해 공유된 여성들의 상처를 다룬다. 너무도 흔한 이름, 김지영은 2019년을 살아가는 여성의 모든 얼굴을 대변하는 캐릭터다. 지영의 엄마 미숙(김미경)은 개인의 이름은 버리고 살아가야 했던 우리네 엄마를 투영하는 인물이다. 두 사람의 삶은 정도만 다를 뿐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미숙은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풋풋한 꿈을 포기하고, 공장에서 미싱을 돌리며 오빠들을 뒷바라지 한다. 지영은 아이를 낳은 후 육아의 벽에 부딪혀 경력 단절 여성이 돼 남편과 아이를 돌본다.

왜 영화는 빙의라는 설정을 택한 것일까. 지영 이전의 세대, 지영의 엄마, 그 엄마의 엄마가 살았던 삶을 대변하고 소통하기 위한 장치일 것이다. 이 엄마의 엄마들은 생애 표출하지 못한 것들을 지영의 몸과 입을 통해 이야기 한다. 참아왔던 것들에 대한 서운함, 우리네는 어쩔 수 없었지만 내 딸인 너 만큼은 그렇게 살지 말라는 당부. 관객들이 가장 많이 눈물을 보이는 장면은 지영의 몸에 외할머니가 찾아와 조언을 건네고, 그 얘기를 들은 미숙이 눈물을 쏟을 때다. 지영의 엄마인 미숙도, 미숙의 엄마인 아무개 씨도 같은 얘기를 한다. 두 엄마가 딸에게 건네는 조언은 똑같다. ‘나는 그렇게 살았지만, 너만은 그렇게 살지 말아라’는 부탁. 관객들은 이 3세대가 함께 한 시퀀스에서 훗날 지영이도 딸에게 같은 얘기를 할 것이라는 걸 짐작했을 것이다. 지영이는 어머니의 이야기이고, 동시에 우리 딸들의 이야기이기도 한 것이다. 영화는 딸들에게 유전처럼 전이된 상처를 어루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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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젠더 갈등 아닌 연대에 초점 맞춰야

‘82년생 김지영’은 인간과 인간에 대한 얘기다. 때문에 이 작품이 오직 젠더 이슈로만 해석되는 것이 안타깝다. 동명의 원작 소설도 그랬지만, 영화평을 남긴 여자 연예인에게 악플이 쏟아지고 있다. 영화는 개봉 전부터 평점 테러에 시달렸고, 현재도 그렇다. 이 모든 소동은 다 소모적이다. 결국 이 영화는 가족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지영의 아버지는 아들을 우선에 두지만 딸 지영 역시 사랑하는 평범한 인물이다. 아버지 역시 그의 부모로부터 그렇게 배우고, 자랐다는 것을 관객들은 안다. 자신이 배려 받으며 자란 걸 인정하지 않는 지영의 남동생 지석(김성철)도 우리의 남동생과 닮았다. 영화를 본 이들 대부분이 지영의 아버지와 남동생, 육아를 권하는 지영의 남편 대현(공유)를 탓하거나 손가락질 하지 않는다.

‘82년생 김지영’은 지영이라는 한 여성이 가정과 사회로부터 받은 상처를 드러내고 치유하는 과정을 다룬다. 그런데 이 이야기 안에서 발견되는 건 놀랍게도 지영 자체 보다 주변 인물들, 타인의 상처에 대한 공감이 형성된다는 점이다. 우리의 어머니가 그렇게 살았을 것이라는 공감은 내 어머니의 삶을 궁금하게 만들고, 이는 소통과 연대로 이어진다. 우리의 아버지와 남편은 어떠한가. 여성들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받았던 상처처럼 남성 역시 남성이라는 이유로 받았을 상처에 대한 공감을 일으킨다. 해석은 자유지만 이 영화가 부디 특정 젠더를 선동, 계몽하는 영화로 읽혀지지 않길 바란다. ‘82년생 김지영’은 연대의 이야기다. 연대는 타인의 상처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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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브이데일리 김지현 기자 news@tvdaily.co.kr /사진=영화 '82년생 김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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