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을 두고 벌어지는 참 괴이한 현상 [무비노트]
2019. 11.01(금) 15:55
82년생 김지영
82년생 김지영
[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참 괴이한 현상이다. 이 시대의 아버지, 남자에 관한 이야기가 수두룩하니 많은 것처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자에 관한 이야기를 한 편쯤 다루었을 뿐인데, 그것도 영화로, 다양한 시각이 충분히 존재할 수 있는 영역의 결과물로 등장했을 뿐인데 이를 둘러싼 반목이 대단하다. 도대체 ‘82년생 김지영’이 무엇이길래 이토록 시끄러운 걸까.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둔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둘러싼 갑론을박이 여전하다. 내용은 별다를 것 없다. 82년 봄에 태어난 여자 ‘김지영’(정유미)이 누군가의 딸에서 누군가의 아내이자 며느리, 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 오늘의 현실을 겪는 이야기다. 굳이 별다를 것을 꼽는다면 살아온 시간이 그녀에게 호되었는지 마음의 병을 앓고 있으며 아이러니하게도 이 병을 통해 동시대의 여성들이 겪는 고통에 깊게 이입하고 있다는 점이다.

페미니즘이라면 페미니즘이다. 사회제도 및 관념에 여성이 어떻게 억압되어 있는지 김지영의 일상을 통해 보여주고 있으니까. ‘억압’이란 단어가 주는 어감이 강하여 으레 자극적인 장면을 떠올리기 마련일 터이나 흥미롭게도 이 작품의 어떤 장면도 해당되는 게 없다. 그저 일상에서 너무도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이야기들로 담아내어, 보는 우리들이 자발적으로 느끼고 깨닫게 할 따름이다.

그렇다고 여성을 크게 두둔하지도, 남성을 여성의 주적인 것처럼 탓하지도 않는다. 왠지 모르게 일부 남성은 이런 패미니즘 요소가 있는 결과물을 접할 때면 마치 자신들을 절대악으로 모는 마냥 혹은 자신들의 것을 빼앗으려 하는 마냥 분노를 표출하곤 하는데 부풀어오른 감정을 조금만 가라앉히면 금방 알 수 있다. 남성이 아닌 비정상적으로 발달해온 사회구조를 탓하고 있다는 사실을. 여기까지가 ‘82년생 김지영’이 담담한 어조로 말하고 있는 전부다.

아무리 훑어 봐도 해당 영화를 두고 출연 배우가 욕 먹을 이유도, 남성과 여성이 편을 갈라 대립할 까닭도 발견되지 않는다. ‘국제시장’이 동족상잔의 비극을 넘어 온갖 고생 다하며 가족을 보살펴온 우리네 아버지의 고단한 생을 진하게 다룬 것처럼, 너무도 당연하게 치뤄온 삶이라 아무도 굳이 언급하지 않았던 우리네 여성의 생을 스크린 안으로 끌고 온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공감이 되지 않는다면, 사회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나와는 다른 시각이 담긴 영화라고 그냥 넘길 일이다. 애써 불편한 감정을 느끼고 그것에 대해 소리를 높인다는 것 자체가 기이한 반응이란 소리다. 실제로 영화를 보는 내내 불편했다는 이들이 존재하는데 그 중 어떤 이는, 여자로 살면서 충분히 대접받고 행복하고 즐겁게 살 수 있는 요소들이 많은데 애초부터 다르게 태어난 남성과의 불평등을 주장하며 불편함을 야기할 필요가 있냐며 반문을 가한 바 있다.

페미니즘의 맥락을 완전히 벗어난 반문이라 내용에 주목하진 않겠다. 우리가 정작 초점을 맞추어야 할 부분은 앞서 말한 것처럼 영화는 영화라 쿨하게 넘기며 될 일을 그러지 못하고 있는 우리 혹은 우리네 사회다.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라는 말이 있다. 이쯤에서 드는 생각은, 현재 우리 사회가 영화 하나에 보이고 있는, 기이할 정도로 부풀어오른 반응은 우리 내면이 이미 비틀린 사회구조를 인식하고 있는데서 비롯된 결론일 수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다 해도 변화는 공포를 불러 온다. 손에 쥔 안정감을 잃을까, 되려 불평등을 경험하면 어쩌나 싶은 두려움, 이는 한낱 허구의 문학작품 혹은 영상매체에 불과한 ‘82년생 김지영’에게 일각에서 보이는 과민반응의 시작점이다. 즉, 소설 혹은 영화가 문제가 아니라 그러한 작품이 화제가 되고 있는 사회의 흐름이 그들에게 문제가 되는 게다. 그러니까 현재 ‘82년생 김지영’이 맞닥뜨리고 있는 괴이한 현상은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움직임을 감지한 이들의 반발과 같다. 어쩌면 괴이하다기보다 ‘좋은’ 현상이라 보는 게 마땅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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