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과 ‘향미’를 가르는 그 간발의 차 [이슈&톡]
2019. 11.01(금) 16:04
손담비
손담비
[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자신은 오래 살 것 같지 않다던 그녀가 끝내 죽었다. 그토록 노래를 부르던 코펜하겐 한 번 가보지 못하고 최고운이란 본명다운 순간 하나 보내지 못하고 기구한 생을 마감했다. 작은 위로로 삼는 건 삶의 끝자락에 그녀에게도 동백이라는 우리집이 허락되었다는 것일 테다. KBS 2TV ‘동백꽃 필 무렵’(연출 차영훈, 극본 임상춘)에서 존재 자체가 인상적이었던 향미(손담비)의 이야기다.

“버려지고 못 배우고 돈 없고 뺵 없고, 그럼 그냥 이번 생은 꽝인 거지, 들고 나온 게 개패인 데 뭘 열심히 사는 척을 해, 더 구질구질하게”

‘물망초’라는 술집 여자의 딸로 태어나 일생을 사랑 한 번 제대로 못 받고 사람들의 괄시를 받으며 살아왔다. 엄마는 제쳐두고라도 그나마 향미의 삶을 지탱하고 있는 가족이라고 동생 하나 있지만 받을 도움은 다 받아놓고, 자신을 머리 위로 아득바득 들쳐 업고 산 향미의 삶은 부끄러워한다.

참 야박한 삶에서 향미가 할 수 있는 건 ‘인생 운 좋으면 제시카고 운 나쁘면 최향미인 거지, 별 거 있니?’라며, 팔자를 탓하며 더 개판 치는 것 뿐이다. 속여 돈 뜯어내고 약점 잡아 협박하고 보이는 돈 훔치고, 물론 이 모든 행위가 하나 있는 동생만큼은 자신과 다르게 사람 답게 살게 하기 위함이라고 하나, 그녀 스스로 표현한 대로 그녀의 삶은 ‘팔자소관’이란 말에 얽매여 시궁창을 마구 굴러댔다.

이런 향미에게 동백(공효진)은 이해할 수 없는 인물이다. 그녀나 동백이나 사랑 받지 못하고 큰 건 매한가지인 데 왜, 어떻게 그렇게 성실히, 진정성 있게 살아갈 수 있는지 도통 모를 일이다. 오갈 데 없어보인단 이유 하나로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면서 자신의 집에 막 들이고. 더 큰 문제는 향미 또한 그런 동백에게 어느새 매혹되어, 자꾸 자신의 삶을 되짚게 되더란 것이다. 쪽 팔리게. “언니는 세상이 막 그렇게 밝아요? 그렇게 보들보들해? 언니나 나나 도찐개찐인데 왜 그렇게 곱냐고.”

“이번 생은 살아봐야 아는 거지, 팔자가 아무리 진상을 떨어 봐라, 내가 주저 앉나”
깨달음은 참 뒤늦게 찾아온다고. 향미는 시궁창 같은 곳에서 깨금발들고 짐승처럼 살며 위했던 동생으로부터 차가운 외면을 받고 나서야, 돈을 훔치고서도 다시 돌아온 자신을 그저 받아주는 동백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동백의 삶이 향미의 것과 다르게 곱디 고울 수 있는 건 팔자에 억눌리더라도 자신의 삶을 함부로 대하지도, 주저 앉아 될 대로 되란 식으로 살지도 않았기 때문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 순간, 그녀는 뒤늦게나마 스스로의 삶을 향한 온전한 속죄를 다짐하나 죽음은 때를 가리지 않았다.

본명 ‘최고운’, 죽고 나서야 세상에 드러난 향미의 진짜 이름이다. 곱디 곱고 싶었으나 팔자를 탓하며 평생을 싸구려 하급 짝퉁 향미로 살아온 그녀가 삶의 말미에서 생애 처음으로 운을 얻어 자신을 기억해줄 친구이자 가족, 돌아갈 집인 동백을 만났다. 그 덕에 죽은 후에라도, 스스로에게 건넨, 사나운 팔자를 상징하는 향미란 이름을 걷어내고 속에 묻혀 있던 고운 이름, ’최고운’을 되찾았다. 세상 다 산 것처럼 굴었지만 외롭고 고단했던 그녀의 삶이 옹산, 적어도 동백에게만큼은 돈을 떼 먹어도 용서가 되는 가족의 이름으로 남은 것이다.

최고운으로 하여금 향미가 아닌 동백이 되게끔 할 수도 있었던, 향미와 동백을 가르는 그 간발의 차는 결국, 누가 뭐라하든 운이 뭐라하든 스스로의 삶을 포기하지 않고 지키는 거였다. 형태는 다르지만 우리의 삶에서도 매순간 일어나는 선택지다. 환경과 운에 수긍할 것인가, 그럼에도 내 삶을 살아갈 것인가. “물망초 꽃말은 뭔 줄 알아? 나를 잊지 말아요. 너도 나 잊지 마, 그래야 나도 세상에 살다 간 거 같지.” 최고운의 향미로서의 삶이, 향미로서의 말들이 유독 애잔하게 남는 까닭이겠다.


[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news@tvdaily.co.kr]
기사제보 news@tvdaily.co.kr
키워드 : 손담비
싸이월드공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