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듀스’, 그들이 훼손한 것에 대하여 [이슈&톡]
2019. 11.11(월) 13:58
프로듀스 X 101
프로듀스 X 101
[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아마도 약간의 속임수라 생각하며 시작했을 터다. 이 정도야 누구나 저지르는 것 아니냐며 대수롭지 않아 했을 수도 있고, 조작으로 떨어진 아이들이야 대중의 선택을 받을 만큼 실력이 있으니 어딜 가도 살아남을 것이라는 막연한 위로를 던지며 죄책감을 없앴을 수도 있다. 어찌 되었든 현재 그들은 오디션 프로그램 투표조작 사건으로 사기와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 등의 혐의를 받고 구속된 상태다.

오디션 프로그램 중 가장 저명했던 Mnet ‘프로듀스 X 101’의 진정성이 결국 훼손되었다. 그것도 제작진에 의해서. 생방송 경연에서 높은 순위를 획득하며 데뷔를 유력하게 만들었던 연습생들의 탈락이 일부 팬들 사이에서 의혹을 일으켰을 때 실상을 알지 못하던 대중은 누군가를 좋아하고 응원하는 마음도 정도가 있다며 살짝 눈살을 찌푸렸더랬다.

하지만 곧 이어 발각된, 상위권의 득표수가 모두 특정 숫자의 배수로 설명되는 기이한 현상은 단순히 팬들의 망상이 아니었음을, 오디션 프로그램 내에서 절대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 일어났다는 게 사실임을 증명했고 해당 방송국은 직접 수사를 의뢰하기에 이르렀다. 파고 들어 보니 사건은 우리 사회의 부조리한 단면을 그대로 담았다 여겨질 만큼 심각했다.

순위 조작만 한 게 아니라 극비에 붙여져야 했을 경연에 관한 정보들이 일부 연습생들에게 의도적으로 새어나갔다. 사전에 알고 연습을 해온 이들이 경쟁에서 유리한 위치에 놓이는 건 자명한 일. 그 어떤 것보다 투명하게 치러져야 할 경쟁이 더럽혀진 탓에 꿈을 향해 절박하게 뛰어든 연습생들의 노력이 한순간에 값싼 재료가 되었다. 더 충격적인 진실은 이 모든 전개가 그들의 양심에 어떠한 자극도 주지 못했는데, 해당 기획사로부터 접대를 받은 까닭이었다.

대중도 모르는 바 아니다. 방송이란 게 돈이 섞이는 일이라 온전한 진심으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그럼에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존재하는데 누군가의 진심이 걸린 가치를 소재로 활용할 때, 적어도 그 진심이나 가치를 농락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목표하는 바가 결국 신기루라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향하는 게 결국 신기루라 하더라도 그들의 실재하는 진심만큼은 건드려서는 안 된다. 왜냐면 존재의 목적과 연결되기 마련인 무형의 가치가 유형의 가치에 의해 대놓고 농락당하는 모습은 대중에게 상처를 입혀, 심한 경우엔 세계를 보는 시각을 왜곡시키기 때문이다. 오디션 프로그램이 가장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부분이다.

그리하여 ‘프로듀스 X 101’의 제작진과 일부 소속사가 함께 저지른 죄는 악질 중의 악질이다. 안 그래도 잘 인지하고 있는 비틀린 사회의 모습을 우리에게 재확인시키며 절망을 안겼고, 논란에 해당이 되었던 되지 않았던, 프로그램에 출연한 모든 연습생들의 진정성을 훼손해, 힘겹게 데뷔한 이들의 활동마저 어렵게 만들었으니까. 실제로 ‘엑스원’은 겨우 미니앨범 하나 발표한 상태에서, 투표조작이 증명된 또 다른 방송분의 데뷔그룹 ‘아이즈원’과 함께 해체설에 오르내리고 있는 중이다.

논란이 없지 않았던 오디션 프로그램이, 설사 허상에 불과할지라도 일구어 온 가치가 있다면, 세계가 아무리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로 나뉜다 하더라도 간절히 꿈을 꾸고 온 힘을 다해 노력하면 그 모든 것을 전복시킬 순간이 분명 찾아올 거라는 두 주먹을 불끈 쥔 믿음을 갖게 한 데 있다. 서로의 이익을 위해 순위를 조작하고 프로그램의 경쟁을 불공정하게 만든 이들이 무너뜨린 건 단순히 프로그램의 진정성이나 존재가치만이 아니었다. 인간이 스스로의 가능성을 향해 지닌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그나마 남아 있던 근본적인 믿음의 훼손, 그들이 최선을 다해 죄의 대가를 치러야 할 이유다.

[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news@tvdaily.co.kr / 사진=안성후 기자]
기사제보 news@tvdaily.co.kr
키워드 : 프로듀스 X 101
싸이월드공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