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혁’, 오늘의 우리와 ‘이방원’의 간극을 좁히다 [이슈&톡]
2019. 11.14(목) 11:42
나의 나라 장혁
나의 나라 장혁
[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배우 ‘장혁’에 의해, 또 하나의 새로운 태종, 이방원이 탄생했다. 이 전까지 우리의 인식 속 태종은 아버지 이성계와 함께 조선을 세우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긴 하나, 고려의 충신 정몽주에서부터 새 나라의 기틀을 마련한 정도전을 비롯하여 동생인 세자까지 죽음으로 내몬 그저 잔혹한 왕이었다. 물론 그가 쓴 잔혹사야 변함이 없지만 장혁의 이방원은 서글픈 눈빛으로 우리에게 이해의 여지를 마련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JTBC ’나의 나라’(연출 김진원, 극본 채승대 윤희정)는 썩어빠진 고려를 도려내겠다 목적한 이들에 의해 새로이 일어난 나라 조선을 주요 배경으로 한다. 도려내는 행위엔 당연히 피바람이 따르고 나라 전체가 얼마나 썩었든 피 섞인 바람은 온전한 정당성을 획득하기 어렵다. 여기서 중요한 건 누가 가장 강한 명분(名分)을 취하고 있는가인데, 명분이란 단어처럼 정치적이고 또 인간적인 게 없다. ‘정당한 이유’를 의미하지만 속내는 결국 원하는 걸 기어코 얻고자, 하고자 하는 구실 및 핑계일 때가 태반인 까닭이다.

‘나의 나라’에서 장혁의 이방원은 고려와는 다른 새 나라를 세우겠다는 명분으로 아비인 이성계 대신, 역사에 악명높은 이름으로 남겨질 것을 감수하며 뭇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인물 정몽주를 죽인다. 이로 인해 내면에 새겨진 죄책감은 그로 하여금 조선을 향한 명분에 집착하게 하나, 정작 이성계는 서늘한 경계심을 내비치며 어린 동생을 세자에 책봉하고 왕후와 공신들은 또 다른 명분들을 내세우며 그를 몰아내기 위한 날선 공격을 펼친다.

아비의 속내를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모진 세월을 동고동락한 뜻이 깊어야 할 부자지간이니까, 아버지의 애정을 원하고 바랐으니까, 굳이 믿으려 애를 쓰며 기다렸다. 그 결과가 이용만 당하고 버려지는 것이라니. 실상을 확인한 애잔한 분노는 왕권강화라는 명분을 칼로 삼아 형제들과 수많은 공신들의 피를 손에 묻히는 결말을 이끌어내고, 이 수많은 피 맺힌 절규를 발판 삼아 이방원은 그토록 원했던 왕으로 향하는 길 위에 오르나 그의 눈빛엔 아비로부터 버림받은 아들의 것이 여전히 남아 있어 한없이 서글프다.

어디까지나 드라마적 상상력이 가미되어 있는 것임을 감안하고서도, 이쯤 되면 우리도 고민을 하게 된다. 태종 이방원을 어떤 시선으로 보아야 하는지. 덕분에 신생국가인 조선의 안위가 든든히 서갔으니, 극 중 그의 말처럼 고려와 똑같은 꼴 나지 않게 되었으니 그의 정치력을 탁월하다고 여겨야 하는가. 혹은 그가 저지른 악업의 동기가 아무리 버림 받은 자의 슬픔이라 해도 결국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니 비난받아 마땅한가.

어쩌면 태종 이방원을 두고 한번도 해보지 않았을 고민이다. 형제들을 죽이고 왕이 된 사람이며 세종대왕의 아버지라는 정보에서 끝나고 말았던 역사에 관한 우리 보통의 관심을 좀 더 심도 있게 끌어내고 있다 할까. 알다시피 이러한 작업은 상당히 뜻 깊다. 기존의 역사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부여함으로써 우리 각자가 실제적 역사에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좀 더 구체적인 노력을 하도록 돕기 때문이다. 잘 만들어진 사극이 지닌 힘이리라.

한 나라의 건국기는 언제 보아도 흥미로워, 그동안 조선의 시작을 그린 드라마가 적지 않았다. 즉, 이미 다 아는 뻔하고 뻔한 이야기로 그칠 수 있었다는 것. 하지만 ‘나의 나라’는 역사의 가장자리에 있었던 이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원 조선 개국의 장면들을 또 다른 시점으로 담아내는 데 성공했다. 이 중심에 있는 인물이 이방원으로, 역사에서 볼 수 없었던 인물의 세세한 이면까지 충실히 담아낸 배우 장혁의 공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작품의 완성도는 물론이고 역사를 향한 우리의 관심까지 높여준 그의 연기력이 참 고마울 따름이다.

[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news@tvdaily.co.kr / 사진제공=셀트리온엔터테인먼트, 나의나라문화전문유한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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