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꽃 필 무렵’의 그 곳, ’옹산’에서 살고 싶다 [이슈&톡]
2019. 11.15(금) 17:00
동백꽃 필 무렵
동백꽃 필 무렵
[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KBS 2TV ‘동백꽃 필 무렵’(연출 차영훈, 극본 임상춘)의 배경이 되는 옹산은 참 이상한 곳이다. '옹산의 심장을 이고 가는 사람들’, 일명 ‘옹심이’라 자칭하는 동네 언니들은 새로이 정착한 동백이를 못 잡아먹어 그렇게 안달이더니, 타지에서 온 이가 동백의 정보를 캐묻자 으름장을 놓으며 내쫓는다. 이 뿐인가. 살인마 까불이가 동백이를 표적으로 하고 있다는 소식에 동네 도장이란 도장은 다 캐고 다닐 요량의 복장으로 보초까지 선다.

“아무래도 말이야, 동백이는 그냥 죽게 냅두면 안되겠어”

그야말로 내 동생은 나만 괴롭힐 수 있다는, 건드릴 수 있다는 가족의 심보로, 외부인이었던 동백(공효진)이 어느새 완벽한 옹산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진 결과다. 생긴 이래 처음으로 상인 번영회도 동백의 술집 까멜리야에서 치렀다. 게장집 손님들 빼앗아 갔다고 동네 땅값 떨어뜨리는 술집이 들어섰다고 근처에도 오지 않던 이들이, 공공의 적 까불이를 앞에 두고 모든 갈등을 넘어 ‘애는 살리고 보자’는 단합을 이루어냈다.

어떤 면에서는 진작에 그러지 꼭 위기를 맞닥뜨려야 아나 싶어 얄궂게 여겨질 수 있다만, 인간이란 원래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스타일의 종족이고, 또 가족이란 게 그렇지 않나. 귀찮다며 서로 밀어 대고 밉다며 서로 콩콩 쥐어 박다가도 누구 하나에게 어려움이나 낙담의 시기가 찾아오면 마음이 쿵 내려앉는다. 함께 고통스러워한다. 어쩌면 가족 구성원 사이에서 오고 가는 타박과 구박은, 네가 별 탈 없이 잘 살고 있어 다행이라는 또 다른 표현일지도 모른다.

“그 때랑 지금이랑 같아요? 조석으로 다가 육년을 안면트고 살았으면 식구지”

삼십여년간을 부모없이, 친인척 하나 없이 홀로 아들 필구를 키워온 동백에게 웅산은, 그녀에게만 유독 인색하게 느껴지던 삶이 느지막히 선사한 선물과도 같은 곳일 수밖에. 온갖 텃세에도 불구하고 군말없이 6년이나 버티며 미운 정, 고운 정 다 쌓아낼 수 있었던 동력이겠다. 진정한 사랑은 위기 앞에서 꽃을 피우는 법, 아이러니하게도 살인마의 위협으로 동백이를 향한 옹산의 진심이 증명된 셈이다.

이 풍경은 특히 오늘의 우리에게 더없이 뜨뜻하게 여겨지는데, 서로 툴툴대고 비아냥 거려도, 인사를 건네는 둥 마는 둥 해도, 물건값을 조금 얹어 받는 듯 보여도 관심이 없으면 알 수 없는 몇 집 건너의 사정까지 빤히 알아, 기뻐할 일 있으면 같이 잔치를 벌이고 도움이 필요할 때는 자신의 일인 마냥 앞장선다. 몇 번 못 보는 친척보다 더 가족같은 이웃사촌들이 사는 곳, 언젠가 우리 곁에도 존재했을 우리의 옹산을 향한 그리움을 잔뜩 끌어올리는 까닭이다.

경쟁사회의 모순에 찌들어 다른 이의 행복을 온전히 축복해주는 법도, 불행을 함께 겪어내 주는 법도 잊어가고 있는 오늘의 우리에게 ‘동백꽃 필 무렵’의 ‘옹산’은 이제 낯설다 못해 허구의 세계에나 존재하는 ‘이상한’ 장소다. 이 사실이 서글퍼서일까. ‘동백꽃 필 무렵’을 보다 보면 어느새 우리는 허구와 실제의 경계를 잊고 이야기 속으로 빠져 들어가 옹산의 일원이 되어 웃고 울며, 잊은 것일지 모를 옛 기억들 혹은 현재 곁에 남아 있으나 잃은 것일지 모를 이들을 떠올리는 것이다.

그리하여 드라마와 현실의 구분은 거뜬히 해낼 경지에 오른 우리가, 이 ‘이상한’ 동네 옹산만큼은 실제로 존재하면 좋겠고, 옹산에서만큼은 살아보고 싶다. 옹벤져스, 옹심이와 함께 살아가면 다른 건 몰라도 한평생 참 뜨뜻하겠다는 생각에서다. 황용식(강하늘)이란 이상적 인물이 나올 법하고 뿌리 없는 동백이가 머물만 하다. ’동백꽃 필 무렵’이 현재 받고 있는 엄청난 사랑은 다른 어떤 것이 아닌, 바로 이 지점에서 비롯된다.

[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news@tvdaily.co.kr / 사진= 팬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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