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꽃 필 무렵' 손담비, 기다림의 미학 [인터뷰]
2019. 11.25(월) 09:00
동백꽃 필 무렵 손담비
동백꽃 필 무렵 손담비
[티브이데일리 최하나 기자] 요행을 바라지 않고 차근차근 때를 기다렸다. 가끔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힘들 때도 있었지만, 버티고 또 버텼다. 그 기다림이 마침내 '동백꽃 필 무렵'을 만나 만개했다. 배우 손담비의 이야기다.

지난 2007년 가수로 데뷔한 손담비는 '미쳤어' '토요일 밤에' 등의 히트곡을 남기며 여성 솔로 가수로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인기가 보장된 가수 활동에 만족하지 않았다. 손담비는 데뷔 전부터 오랜 기간 꿈꿔 온 배우로서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도전을 시작했다. 그러나 마냥 꽃길일 줄 알았던 배우의 길은 손담비를 끊임없이 시험에 들게 했다. 작품이 없어 2년 동안 쉴 때도 있었고, '가수 출신 배우'라는 꼬리표 때문에 연기력은 저평가받기 마련이었다.

그런 손담비에게 배우 전향 10년 만에 기회가 찾아왔다. "향미를 생각하며 네가 떠올라"라는 절친한 배우 공효진의 추천으로 KBS2 '동백꽃 필 무렵'(극본 임상춘·연출 차영훈)에 캐스팅된 것. '동백꽃 필 무렵'은 편견에 갇힌 맹수 동백(공효진)을, "사랑하면 다 돼!"라는 무조건적인 응원과 지지로 깨우는 황용식(강하늘)의 폭격형 로맨스와 더불어 동백과 용식을 둘러싼 이들이 "사랑 같은 소리 하네"를 외치는 생활 밀착형 치정 로맨스를 그린 작품이다. 손담비는 극 중 까멜리아 아르바이트생 향미 역을 맡아 연기했다.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때부터 작품이 잘될 거란 확신이 있었다. 필력으로 일찌감치 인정받아온 임상춘 작가의 대본을 믿었고, 대본대로만 작품이 나와준다면 흥행은 어느 정도 예견된 상황이었다. 손담비는 그런 작품에서 자신의 몫을 다하기 위해 전에 없던 노력을 했다. 향미라는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6개월의 시간을 쏟아부었다. 향미에게 자신과 비슷한 부분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캐릭터의 성격을 만들어내는데 애를 먹었다고.

시종일관 맹한 표정에 느릿한 말투이지만 자신의 원하는 바를 위해서는 협박도 서슴지 않고 하는 향미의 이중적인 모습을 만들어내기 위해 손담비는 연습을 거듭했다. 이에 손담비는 "긴 대사를 향미만의 템포를 가져가면서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이 힘들었다. 대본을 천천히 읽는다든가 거울을 보면서 표정을 연습하기도 했다"고 했다. 또한 뿌리 염색을 하지 않고, 옷을 촌스럽게 입는 등 향미의 외적인 부분을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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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미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외로움'이다. 빚을 갚기 위해 아등바등하지만 현실은 나아지지 않고, 코펜하겐에 사는 남동생 뒷바라지를 위해 죽어라 노력했지만 돌아오는 건 남동생의 차디찬 무시였다. 세상 어디에도 발 붙일 곳이 없이 외톨이처럼 떠돈다. 동백뿐만 아니라 까멜리아 손님들의 물건을 훔쳤던 이유도 외로움에서 비롯된 버릇이었다. 유일하게 자신을 품어준 동백을 위해서라도 새로운 삶을 살겠다고 다짐한 순간, 연쇄 살인마 까불이에게 죽음을 당한다. 이러한 향미의 설정은 그의 비극적인 죽음을 더욱 비극적으로 그려내며 시청자들의 마음을 울렸다.

향미의 이야기를 만들어낸 건 임상춘 작가였지만, 이를 완성한 건 손담비였다. 초반 어디로 튈 줄 모르는 옹산의 시한폭탄과도 같았던 향미는 사실은 지독히도 외로웠던, 또 외로움을 나름의 노력으로 이겨내려 했지만 녹록지 않은 세상 때문에 좌절하던 중에 동백을 만나 마지막 희망을 품고 살아가려 했던 한 사람이었다. 그 긴 서사를 시청자들에게 이해시키고 깊은 울림을 남긴 건 손담비의 노력이 담긴 연기력 덕분이었다.

특히 향미가 동백과의 마지막 장면에서 물망초의 꽃말인 "나를 잊지 말아요"라는 말을 남기는 장면은 시청자들을 오열케 했다. 손담비 역시 이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손담비는 "그 장면을 촬영할 때 난리도 아니었다. 정말로 툭 치면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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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지 않은 캐릭터를 쉽지 않게, 그러나 완벽히 소화해낸 손담비에 시청자들의 호평이 뒤따른 건 당연지사였다. '동백꽃 필 무렵'의 최대 수혜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손담비는 이번 작품을 통해 배우로서 제 존재감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손담비는 이에 대해 "연기한 지 10년 정도 됐는데, 그동안 꾸준히 내공을 쌓아왔기 때문에 이번 작품에서 포텐을 터트릴 수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지인들의 조언 덕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는 손담비는 "언니들이 꾸준히 하다 보면 너의 포텐을 터뜨릴 것이라고 했다. 실망하지 않고 달려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던 것 같다"고 했다. 또한 손담비는 과거 자신처럼 지금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후배들에게 "기회는 언제든지 온다는 걸 말해주고 싶다. 그 기회를 잡느냐 못 잡느냐는 본인에게 달렸지만 기회는 언젠가 반드시 온다"고 했다.

"10년 동안 힘든 시간도 많았죠. 왜 항상 '가수 출신 배우'라는 꼬리표가 붙는지, 엄청 힘들었죠. 그래도 희망은 있었어요. 계속하다 보면 꼬리표를 떼어줄 캐릭터를 만날 것이라는 희망으로 기다렸죠. 그 시간들이 있었기 때문에 '동백꽃 필 무렵'으로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다행이죠."

배우 인생 2막을 연 손담비는 요즘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다. '동백꽃 필 무렵'의 좋은 기운을 그대로 이어나갈 차기작을 고르고 있다고. 예전 같았으면 뭐라도 해야 한다는 조바심이 있었다면, 지금은 다음을 준비하는 이 시간이 기대가 된다고.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와 꽃을 피워낸 손담비의 다음을 기다리는 일이 이제는 즐거운 이유다.

[티브이데일리 최하나 기자 news@tvdaily.co.kr/사진제공=키이스트,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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