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꽃’의 가장 큰 성과, 멜로에 ‘새로운 궤적’을 그려내다 [이슈&톡]
2019. 11.29(금) 09:59
동백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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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의 인기 비결은 박복한 팔자란 틀에 갇혀 있던 여자가 제 운과 맞붙어 기어코 틀이 깨어지는 기적을 얻어낸다는 서사에 있다. 여타의 드라마들처럼 그러한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 이상향에서나 존재할 법한 사랑 가득한 인물의 도움을 얻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철저하게 조력에 불과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오로지 동백이라 불리는 한 여자의 따뜻한 의지에서 비롯된 선택들이 모여 온전한 승리를 이루어가는과정은, 기존의 드라마에서 보아왔던 멜로와 차원이 다른 힘을 발휘한다.

조력자라고 남자가 뒤안길에 머물러 있는 것만은 아니다. 어렸을 때 부모에게 버림 받고 사랑하는 남자에게도 버림 받았으나 하늘이 준 선물이나 마찬가지인 아들을 사랑하는 그 마음의 힘으로 살아가고 있는 동백에게, 그늘에 움츠러든 모양새가 없을 리 없었을 터. 이 지점이 ‘동백꽃 필 무렵’의 가장 흥미로운 부분인데, 작가는 이런 동백과 남자와의 운명적인 첫 만남을, 그러니까 남자가 동백이에게 반하는 순간을 그녀가 운영하고 있는 술집이 아닌 서점에서 그려낸다.

서점 속 동백은 세상의 어떤 선입견이나 편견도 끼어들 수 없는 동백이 그 자체의 예쁨을 발산하고 있어, 이를 단숨에 알아본 남자는 그녀를 자신의 ‘다이애나(과거 영국의 왕세자비였던 여성)’로 삼는다. 여기서 우리의 의문은 결국 여자의 외모에 반했다는 건데 지금까지 봐 왔던 보통의 멜로와 다를 게 없지 않냐는 것. 작가는 예상이라도 한 듯 이어 동백과 남자의 두번째 만남을 이끌어낸다. 어디서? 바로 동백의 가게, 술집 ‘까멜리야’에서다.

우리가 주목해보아야 할 건 ‘까멜리야’를 대하는 남자의 인식의 변화다. 무작정 자신의 다이애나는 변호사일 거란 억측을 펼치던 남자는 ‘까멜리야’는 근처에도 가기 싫어한다. 돈만 내면 술과 음식 뿐 아니라 여성의 웃음과 노래 등등을 살 수 있는 곳이라는 또 하나의 억측을 펼친 까닭이다. 하지만 마지못해 간 그곳에서 자신의 다이애나를 마주하고 충격에 휩싸이는데 이도 잠시, 술과 음식 외엔 다른 건 살 수 없다고 말하는 동백의 모습에 이제는 아주 홀딱,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을 만큼 반하고 만다.

남자는 서점에서 본 동백이 본연의 모습을 ‘까멜리야’에서도 발견한 것이다. 남자 또한 선하고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이지만 지금까지 보통의 세계를 살아왔기에, 보통의 사람들이 술집에 대해, 술집에서 일하는 여자에 대해 가지는 왜곡된 틀을 동일하게 가지고 있었다. 작가는 남자로 하여금 이 어쩔 수 없는 한계를 뛰어넘게 하고 싶었고, 그래야 동백의 본 모습을, 그녀가 무엇을 가졌는지를 알아봐 줄 수 있을 테니까, 굳이 첫 만남을 그 어떤 시각이나 관점도 작용하지 않는 서점에서 이루어지게 했다고 본다.

이후 작가의 의도대로 남자는 동백이 제 모습을 되찾는데 있어 중요한 증인이자 계기로서 활약을 펼친다. 세상이 제 멋대로 얹어준 그늘, 틀을 걷어내도록 자신이 본 진짜배기 동백이, 따뜻한 의지가 누구보다 강력하여 세상의 어떤 시선에도 굴복하지 않는 그녀의 본 모습을 지속적으로 상기시켜주었다 할까. 그리고 남자는 점차 깨닫게 된다. 자신이 도움의 손길을 뻗지 않아도 제 힘으로 닫힌 두려움의 문을 열고 나와 살인마에게 선전포고를 할 수 있는 용기 백배의 여자가 바로 동백이라는 것을. 그래서 한없이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저 우리가 우리 스스로에 맞서길 바랐을 뿐이에요, 우리가 뭘 가졌는지 꿰뚫어 봤으니까요”
영화 ‘내가 죽기 전에 듣고 싶은 말’에 나오는 대사다. ‘동백꽃 필 무렵'의 작가가 그리고자 한 멜로는 동백이 제 스스로를 올바로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을 가지고 주어진 삶과 운명에 제대로 맞서게 하는 것이지 않았나 싶다. 동백에게 감정을 이입하여 드라마를 시청한 수많은 우리들에게도 동일하게 바랐던 마음일 테고. 단순히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가 전부였던 멜로에 새로운 궤적을 그려냈다는 것. ‘동백꽃 필 무렵’이 남긴 성과 중 가장 귀하다.


[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news@tvdaily.co.kr / 사진=팬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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