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거짓말’과 ‘보좌관2’의 치밀하고 통쾌한 승리가 더없이 중요한 이유 [이슈&톡]
2019. 11.29(금)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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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2000년에 개봉한 영화 ‘에린 브로코비치’는 실제 인물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으로, 주된 에피소드로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어느 대기업의 공장이 식수를 오염시켜 마을 사람들을 병들게 한 사건이 등장한다. 그 참상은 이야기 상으로도 매우 끔찍하여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병에 걸려 죽거나 죽음을 앞두고 있으며 이는 엄마 뱃속에서 갓 모습을 드러낸 생명체도 예외가 없었다.

십수년 전의 영화 이야기를 꺼낸 것은 현재 방영 중인 두 드라마의 소재가 그와 동일하기 때문. 시즌2로 돌아온 JTBC ‘보좌관2-세상을 움직이는 사람들’(이하 ‘보좌관2’)에서는 주진화학이란 곳이, OCN ‘모두의 거짓말’에서는 JQ라는 거대그룹의 전신인 정건 제철소가 오염물질을 유출하여 해당 지역의 사람들을 병들게 했다. 영화와 다른 이 둘 만의 공통점이 있다면, 정계와 유착하여 이 거대한 살인을 은폐하려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에린 브로코비치’ 쪽이 문제의 해결은 그나마 속시원하고 깔끔했다. 협박을 받는 일도 있긴 했지만 ‘에린 브로코비치’가 겪는 주된 어려움은 식수를 오염시킨 대기업에 소송을 걸겠다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재판이 길고 복잡해졌다는 것 뿐, 하지만 이마저도 지혜롭게 대처하여 피해를 입은 마을 사람들 모두 충분한 보상금을 받았음은 물론, 해당 오염물질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약속도 얻어냈다.

그로부터 20년이 가까운 세월이 흐른 오늘의 한국이 처한 상황은 좀 더 악독해졌을까. ‘모두의 거짓말’과 ‘보좌관2’의 것은 좀 더 끔찍한 양상으로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인체에 유해한 것들을 양심의 거리낌 없이 사람들의 삶 속으로 들여보낸 것도 모자라, 이를 은폐하기 위해 권력을 돈으로 사고 혹 사실을 알고 밝히려는 사람들이 나타나면 살인까지 서슴지 않는다.

이들에게 자신의 잘못으로 무고하게 죽음의 덫에 걸려야 하는 사람들의 고통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로 인해 자신이 쌓아올린 모든 것을 잃을까, 이것만이 대단한 문제가 된다. 물질과 권력을 향한 탐욕으로 다른 이의 고통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감각을 잃어버린, 사람의 모습은 하고 있으나 사람이 아니라고 보아야 위안이 될 정도라 하겠다.

악은 특별한 곳에서 태어나지 않는다. 바로 이 평범한 맥락, 사람이라면 다른 이의 고통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는 이 평범한 맥락이 개인의 욕망에 의해 지켜지지 않고 무시당하는 그 곳에서 태어나 또아리를 튼다. 그리고 이 욕망들의 치밀한 결탁은 또 다른 보통의 평범한 이들에게까지 덫을 놓아 모두 욕망의 하수인으로 만들어 버린다. ‘모두의 거짓말’과 ‘보좌관2’의 오염물질 유출 사건이 유독 끔찍하게 느껴지는 까닭이다.

영화나 드라마는 당시의 사회상을 반영하기 마련이다. 즉, 비슷한 사건을 다룬 ‘에린 브로코비치’와 ‘모두의 거짓말’, ‘보좌관2’가 갖는 온도의 차이는, 그 사이 큰 걸음으로 발달한 자본주의가 키워낸 욕망의 힘이 얼마나 강력해졌는지 보여 준다. 그래서 ‘모두의 거짓말’과 ‘보좌관2’가 이제껏 담아낸 악의 치밀함만큼 앞으로 그려낼 승리의 모습이 너무도 중요하다.

욕망이 치밀하게 뚫어 놓은 악의 살길을 선의 방법이 어떻게 치밀하게 막아내는지, 얼만큼 제대로 단죄하는지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당시의 사회상을 반영한다는 의미는 사람들이 영화나 드라마에 그만큼의 영향을 받는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니까. 그리하여 통쾌한 결말이 우리의 실제적 현실에서도 가능할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는, 실화를 이끌어내는 허구가 되어준다면 드라마로서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역할을 수행한 것이 아니겠는가.

[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news@tvdaily.co.kr / 사진=O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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