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비판할 수 있는 자격은 ‘태연’을 비롯한 ‘소녀시대’에게만
2019. 11.30(토) 20:22
태연
태연
[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누구나 한번쯤 으스대는 ‘전설 속의 나’가 있는 법이다. 알다시피 ‘왕년에’라고 시작하는 말들은 대부분 약간의 사실에 어느 정도의 부풀림이 들어간 허구이지 않나. 이처럼 으레 사람들은 의식하지 못하는 새 스스로 과거의 기억을 확대 편집하기도 하는데 ‘소녀시대’ 멤버가 될 뻔한 사람이라 소개했다가 당사자들의 선명한 추억에 호된 소리를 들은 ‘홍지민’이 큰 예다.

MBN 예능프로그램 ‘보이스퀸’에 출연한 그녀는 자신을 ‘어쩌면 소녀시대가 될 뻔했던, 17년 전 SM 연습생 출신’이라 소개했다가 곤욕을 치르고 있는 중이다. ‘태연’이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바로 반박을 가했기 때문. “우리는 대중들에게 보여지기 전부터 수없이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왔고 누구나 한 번 쯤 거쳐 갈 수 있는 버스정류장같은 그런 팀이 아니에요.”

사실 쉽게 뭐라 하기 힘든게 지난 날을 이야기하는 우리의 모습에 대해 가슴에 손을 얹고 되짚어 보았을 때 누구나 하나쯤 미화된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까닭이다. 조금이라도 주어진 가능성을 가지고 만약 그것이 나를 좀 더 조명해 주었다면 그 가능성이 향하는 바를 이룰 수 있었을 거라고. 그리하여 그녀를 이해 못하는 바가 아니다만 다수의 대중이 보는 프로그램에서 꺼내 보이기에 ‘소녀시대’란 대상은 존재감이 너무 선명했다.

그리고 여태 ‘소녀시대가 될 뻔했다’는 이가 한 두명이 아니었으니 ‘소녀시대’ 당사자들로서는 땀과 눈물, 모든 고통을 흘려 가며 노력한 시간들이 만들어낸 현재의 성과를 단순히 운과 불운의 차이로만 매도하는 것으로 느껴져 불쾌해 할 수밖에 없고. 즉, 제 무덤 제가 판 격이긴 한데 여기서 또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은 이를 당당하게 비판할 수 있는 자격은 태연을 비롯한 소녀시대에게만 주어져 있다는 점이다.

문제는 개인 SNS를 비공개로 돌릴 정도로 이어진 거센 팬들과 일반 대중의 공격이다. 물론 ‘감히 우리의 소녀시대를 함부로 소재거리로 삼다니’의 심정은 이해가 간다. 하지만 당사자가 나서서 이를 단호하게 저지했고 많은 이들에게 이 소식이 알려졌다. 홍지민은 이미 판단을 받은 것이다. 여기서 당사자가 아닌 이들이 취하는 추가적인 공격이나 판단은 정도를 넘은 군중심리에 불과하여, 절대 정당하다 볼 수 없다.

이는 그들이 사랑하는 스타에게도 피해를 끼치는 일이다. 그러다 어떠한 현상이 벌어질 수 있냐면, 마땅한 자격을 가지고 홍지민을 비판한 태연만 도리어 과하게 반응하여 연일 화제와 논란을 불러 일으킨 모양새가 된다. 군중심리의 파급력은 이토록 무섭다. 그들의 비난 어린 손가락들이 과부화되면 피해자인지 피의자인지 분간 못하고 마구 찔러대어 결국 옳고 그름은 어딘가로 사라져 버린 파국을 낳고 만다.

우리도 언젠가, 그리고 언제든지 그와 같은 잘못을 저질렀을 수 있고 저지를 수 있다. 인간의 기억이란 쉽게 미화되고 편집되곤 하니까. 그러니 아무리 옳고 그름이 선명해도 어떤 치명적인 도덕률을 어긴 게 아니라면, 그리고 이미 당사자가 제대로 비판을 가했다면,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백번 양보하여 부가적인 비난과 분노는 넣어 두자. 비난과 분노가 필요할 때는 따로 있다.


[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news@tvdaily.co.kr]
기사제보 news@tvdaily.co.kr
키워드 : 태연
싸이월드공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