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 최민식, 사람 냄새 가득한 배우 [인터뷰]
2019. 12.22(일) 10:00
천문 하늘에 묻는다 최민식
천문 하늘에 묻는다 최민식
[티브이데일리 최하나 기자] 사람을 무장해제시키는 너털웃음, 그러나 연기에 있어서는 단 한틈도 허용하지 않는 완벽주의자. 중원을 호령하는 호랑이 같은 인상이지만, 그 속에는 뜨거운 열정과 사람 냄새가 가득한 배우 최민식이다.

최민식이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감독 허진호·제작 하이브미디어코프)에서 조선의 위대한 과학자 장영실로 분했다. '천문: 하늘에 묻는다'는 조선의 하늘과 시간을 만들고자 했던 세종(한석규)과 장영실(최민식)의 숨겨진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세종과 장영실, 조선의 과학적인 기틀을 마련한 위대한 업적을 이뤘다는 역사로 기억되는 두 인물의 이면을 조명한 이유는 무엇일까. 최민식은 두 인물의 관계성에 초점을 맞췄다. 그는 "두 사람이 어떻게 의기투합하게 됐고, 어떤 이야기를 나눴을까 그런 것들이 궁금했다"고 했다. 신분계급 사회에서 천민 출신인 장영실이 대호군의 자리까지 오른 것은 파격 그 자체다. 그의 재능을 알아본 세종이 없었더라면, 장영실은 그냥 손재주가 좋은 관노비에서 그쳤을 것이다. 최민식도 대단한 과학 업적을 남긴 두 사람의 이면에 대한 궁금증을 이번 영화를 통해 풀어냈다고 했다.

두 사람의 관계성은 최민식을 무한한 상상력의 세계로 이끌었다. 최민식은 세종과 장영실의 관계성을 토대로 여러 상황들을 상상하며 점차 장영실에 이입하기 시작했다. 경직된 궁궐에서 세종과 장영실은 과학이라는 하나의 공통분모를 통해 소탈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신분을 뛰어넘은 우정을 나누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했다고. 최민식은 "두 사람의 관계에 집중하다 보니 어린아이처럼 서로 어울려서 이야기하고, 궁 후원 뒤뜰에서 그 당시 했던 놀이도 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민속놀이도 했을 것 같다. 세종이 '영실아 바람 좀 쐬자' 하면서 후원에서 기분 전환도 하고 그런 자유로운 모습들이 자꾸 떠오르더라"고 했다.

세종과 장영실의 관계가 급진전되는 계기는 별이다. 근정전 앞마당에서 서로의 신분은 내려놓고 오롯이 하나의 꿈을 향해 함께 가는 지기처럼 바닥에 누워 별을 관찰하는 두 사람의 모습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동으로 다가온다. 이에 최민식은 "사람과 사람이 친해질 때 뭔가 그 사람하고 맞는 게 있어야 하지 않나. 그걸 우리는 별로 설정했다"면서 "별이라는 하나의 매개체를 통해서 세종은 장영실의 세계로, 장영실은 세종의 세계로 들어갔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조선의 하늘과 시간을 만들어 백성을 이롭게 하고자 하는 세종의 꿈과 자신의 과학적 재능을 신분에 상관없이 펼쳐내고 싶었던 장영실이 혼천의, 자격루 등의 위대한 과학적 유산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은 흥미를 넘어 경이롭기까지 하다. 고증을 거쳐 스크린으로 구현된 조선의 과학 기구들은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며 보는 이들의 눈을 즐겁게 한다.

최민식도 완벽에 가까울 정도의 완성도를 자랑하는 세트와 소품으로 인해 연기적으로 많은 부분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최민식은 "'코 길이 물시계' 장면을 촬영하기 전, 시연하는 걸 한 번 봤는데 어떻게 만들었냐 할 정도로 대단했다. 그래서 미술팀장한테 '당신이 장영실이다'라고 농담할 정도로 너무 기가 막히게 만들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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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는 기록되지 않았던, 하나의 기구를 만들고 아이처럼 좋아하는 장영실과 세종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하나의 관전 포인트이기도 하다. 자신이 만든 기구를 제일 먼저 세종에게 보여주고 싶어 버선발로 뛰어가는 장영실의 모습은 칭찬을 받고 싶어 눈을 빛내는 아이와도 같다. 최민식은 과거 한 로봇 학자의 강의를 봤던 기억을 떠올려 장영실의 이러한 모습을 만들어냈다고 했다. 그는 "너무 열정적으로 자기가 만든 로봇을 갖고 나와서 보여주는데, 천진난만하더라. 마치 애들이 장난감 갖고 노는 것처럼 완전히 몰입한 모습이 기억났다. 장영실도 비현실적이고 아주 비정치적인 사람이지 않나. 자신이 만드는 것에 대한 재미에 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또한 비가 와 별구경이 어렵게 되자 낙심하는 세종을 위해 창호지에 손수 구멍을 뚫어 별자리를 만들어 주는 장영실의 모습은 오래도록 잔상이 남을 정도로 그 여운이 강하다. 최민식은 이에 대해 "그런 순수함을 간직한 사람들이니까 위대한 과학 기구들은 만들 생각도 한 것 아니겠나. 저희는 캐릭터의 방향을 그렇게 잡은 거다. 세종이 정치적인 대립이 있을 때는 카리스마로 대립하고, 장영실하고 놀 때에는 좋아라 하는 그런 변화의 모습들을 그려내고 싶었다"고 했다.

조선의 하늘과 시간을 만들고 싶었던 세종은 이로 인해 정치적인 공세에 시달린다. 하늘과 시간은 명 황제만이 가질 수 있었던 시대에서 세종의 행보는 단연 명과 사대부들에게 눈엣가시였다. 정치적 공세와 자신의 이상 사이에서 괴로워하는 세종을 위로하는 건 그와 같은 꿈을 꿨던 장영실이었다. 극 초반부터 세밀하게, 또 켜켜이 쌓아 놓은 세종과 장영실의 인간적인 신뢰와 감정들이 발현되면서 영화는 클라이맥스로 향하게 된다. 이는 마지막 장면에서 세종과 장영실이 하는 선택의 이유를 납득하게 만들면서 가슴 뭉클한 감동을 자아낸다.

이 감동은 장영실과 세종을 연기한 배우가 최민식과 한석규였기에 가능했다. 내로라하는 연기파 배우인 두 사람은 동국대학교 선후배 사이이기도 하다. 오랜 시간 같은 일을 해 오면서 두 배우들이 나눈 실제 감정들이 영화에 녹아나면서 감동을 배가시킨다. '천문: 하늘을 묻는다'로 20년 만에 한석규와 연기 호흡을 맞춘 최민식은 "농담이 아니고 엊그저께 만난 것 같이 어색하지 않았다"면서 "군대 갔다 온 거 포함해서 대학시절을 같이 보냈다. "20대를 같이 보냈으니까. 뭔가 각별한 게 있는 것 같다. 그런 게 이번 작푸을 하면서 도움이 된 건 분명한 것 같다"고 했다.

이어 최민식은 "다섯 마디를 해야 할 걸 한 두 마디만 해도 알겠더라. 그런 것들이 많은 도움이 됐다. 석규랑 옛날에 같이 연극하면서 대본 놓고 작품 이야기를 수도 없이 했으니까. 서로 뭘 원하는지 말 안 해도 알 것 같더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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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호 최민식 한석규가 들려주는 옛날이야기"라고 '천문: 하늘에 묻는다'를 정의한 최민식은 관객들이 가벼운 마음으로 영화를 보러 오길 소망하고 있었다. 최민식은 "누구나 다 아는 세종과 장영실의 이야기를 저 사람들이 어떻게 만들었나 마치 한 번 들으러 가보 자라는 그런 가벼운 마음으로 오셔서 보시면 좋지 않을까 싶다. 너무 많은 기대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와서 보시면 얻어가는 게 있지 않을까 싶다"고 당부했다.

조선 최고의 과학자 장영실로 살았던 최민식은 이제 수학자가 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수포자(수학포기자)'였는데 수학자를 하게 됐다"면서 차기작에 대해 이야기했다. 과학과 수학엔 젬병이었던 최민식이 수학자가 되기로 결심한 건 작품 선택에 있어 그의 마음 가짐이 조금 달라졌기 때문에 가능했다. 최민식은 "옛날에는 작품을 선택할 때 제가 뛰어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들어야 했다. 그런데 지금은 일단 한 번 만나보자는 생각을 한다. 조금 유연해졌다고 할까. 약간 구멍이 보이고 어설퍼 보이는 거를 메꿔가는 재미를 느끼고 있다"고 했다.

연차가 쌓여감에 따라 생긴 책임감도 최민식을 변화시켰다. 최민식은 "어느덧 후배들이 많아지다 보니까 뭔가 내가 초기부터 참석을 해서 끌어줘야 한다는 나름의 책임감도 느껴진다"고 했다. 또한 최민식은 "예전에는 입맛에 맞는 꽉 찬 작품을 골랐다면, 이제는 같이 발전해나가는 작품을 선택해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처럼 자신의 영향력과 후배들을 생각하는 속 깊은 면모를 지닌 최민식의 행보를 아낌없이 응원하는 바다.

[티브이데일리 최하나 기자 news@tvdaily.co.kr/사진=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 스틸, 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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