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준일 신드롬’, 오늘의 시간을 입었던 과거가 제 자리를 찾기까지 [이슈&톡]
2019. 12.31(화) 14:20
양준일
양준일
[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시대를 풍미했던 가수가 아닌, 시대의 현실에 좌절을 겪은 가수가 되돌아왔다는 건, 단순한 ‘레트로(복고주의, 복고풍)’라 볼 수 없다. 해당 과거의 기억을 가지고 있지 않은 새로운 세대에서 분 바람이라면 더더욱. 그래서 ‘양준일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양준일’의 이야기는 ‘뉴트로(복고를 새롭게 해석하는 경향)’의 관점에서 볼 수 있으나, 그보다 좀 더 특별한 게 있다.

91년 싱글앨범 ‘리베카’를 발매하고 활동을 강제종료 당한 뒤 미국으로 돌아갔다는 양준일은, 그로부터 28년이 지난 2019년, 강제소환되어 돌아온다. 유투브 채널 ‘온라인 탑골공원’에 그가 활동했던 무대들이 게시되면서, 약 30년 전이라고 하기에 무색할 만큼 세련된 패션과 춤, 신선한 풍의 노래 등이 많은 이들의 시선을 끈 결과다.

놀라운 건 그의 무대에 관한 기억이 있을 수 없는, 그러니까 동일한 과거를 공유하지 못할 세대의 환호까지 받고 있단 사실이다. 특히 이 세대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무대 위에서의 행위는 물론이고 무대 밖에서의 모습 또한 가장 앞서나가는 것을 취하도록 잘 다듬어진 아이돌그룹에 익숙하다. 그런데 50대에 들어선 옛 가수에게 마음을 빼앗긴다니, 그의 무대 자체가 과거의 것으로 생각하기에는 너무 오늘의 시간을 입고 있었다는 증거다.

그리하여 양준일은 JTBC ‘투유 프로젝트- 슈가맨 3’을 통해 현실 속 무대에 첫 발을 내딛게 되는데, 대중의 표현을 빌리자면 마치 시간여행자인 양, 그 때와 다름 없는 흥과 감각, 매혹적인 무대매너를 선보여 69년생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영상으로만 보던 것을 실제 눈 앞에서 본 사람들은 그 감회가 더욱 컸겠다.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건 이 뿐만이 아니다.

그의 굴곡 진 삶의 이야기다. 수십 년이 흐른 후에 들어도 좋을 만큼의 음악은 당시에는 그만큼 낯설고 익숙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당연히 양준일의 것은 환영보다 거절의 시선을 더 많이 받았으며 미국 교포 출신이라 한국어에 능숙하지 못하다는 점까지 미움의 이유가 되어야 했다. 그리고 더 이상 활동을 하지 못하는 지점이 찾아오는데 비자 발급을 거부당한다. 당시 그의 비자를 담당한 이가 양준일의 존재 자체를 싫어했기 때문이다.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처사이나, 수용력이 없는 사회가 지니기 마련인 가혹한 우둔함이라 해두자. 몰랐던 거다. 이렇게 30년이나 흐른 지금, 무려 2020년을 눈 앞에 둔 이 때 사람들이 양준일을 불러낼 줄은. 그것도 단순히 과거의 추억을 복기하는 과정이 아니라(솔직히 추억을 떠올릴만큼의 시간 자체를 허락해주지 않았으니까), 시대를 앞서간 과거가 제 시간을 찾는다는 의미에서일 줄은.

흥미롭게도 이러한 양준일의 삶이 사람들에게 위로를 건네더라는 것이다. 어떤 위로라면 시대가 개인에게 좌절을 안길 수 있어도 의미 있는 시간마저 사라지게 할 순 없다는 것, 시대를 관통하는 옳은 운명이 의미를 지닌 순간을 기어코 찾아내어 어느 때고 제 자리로 돌려놓을 것이라는, 그러니까 우리가 진실하게 만들어온 생의 순간들은 시대나 사회가 헛되다 해도 결국 제 의미를 찾고 말 것이라는 믿음이다.

“더 이상 과거가 나를 괴롭히지 않는다”
오늘의 시간을 입었다는 이유로 시대에 짓눌려 있던 과거의 재등장과 세대를 아우르는 사람들의 환영, 옳은 운명은 생각보다 우리의 삶에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있어, 진심어린 순간들을 그냥 묻어두거나 지나치지 않는다. 그저 뉴트로로서만 해석하기에 부족한 ‘양준일 신드롬’의 특별함은 여기에 있다.

[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news@tvdaily.co.kr / 사진=송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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