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수(스토브리그)와 고하늘(블랙독)이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 방법 [이슈&톡]
2020. 01.14(화) 17:18
스토브리그 블랙독
스토브리그 블랙독
[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사연이 없는 사람은 없으며, 와중에는 사연을 팔아 사는 사람도 있다. 드라마에서 후자는 특히 중요한데, 사연을 잘 팔아야 시청자들의 공감과 흥미를 끌어낼 수 있는 까닭이다. 파는 방법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여기 독특한 행보를 보이는 드라마 속 두 인물이 있다. ’스토브리그’의 ‘백승수’와 ‘블랙독’의 ‘고하늘’이다.

백승수(남궁민)와 고하늘(서현진)은 사연이 있다는 사실을 굳이 티 내지도, 티를 내야 한다 해도 구구절절 읊는 방식을 취하지 않는다. 그의 사연을, 그 사연으로 인한 감정의 움직임을 알고 싶어 애가 타는 쪽은, 오히려 시청자들이다. 그들이 지닌 매혹적인 성품의 근간이 분명할 그 사연이 너무 궁금하여 혹은 더 깊이 알고파서 이미 던져진 떡밥을 물고 추측에 추측을 더할 따름이라 할까.

“도대체 무엇 때문에 내게 그렇게까지 할 수 있었던 걸까, 저는 그 답을 꼭 찾아야겠습니다.”

고하늘의 경우 초반에 밝혀졌다. 버스 전복 사고로 죽을 뻔한 그녀를 살리고 생을 마감한 교사가 실은 기간제여서, 비정규직이어서 그 어떤 예우도, 보상도 받지 못하는 것을 목격하고 죄책감으로 가슴을 움켜쥔 채 살아온 인물이었던 것. 이 충격적인 경험은 그녀가 교단에 서고자 했던 이유이자 위기의 순간마다 다시 일어나는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해당 사연은 한 번 강렬히 등장한 이후로는 이야기의 전개에서 굳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렇게 형성된 성품을 지닌 하늘이 기간제 교사로서의 삶을 단단히 이고 가는 것을 보여줄 뿐, 비극적인 기억이 주로 하기 쉬운 실수인 애꿎은 감성 팔이를 하지 않는다는 소리다. 그저 보는 이들이, 맞닥뜨리는 모든 상황 속에서 그녀가 취하는 선택이나 태도들을 이해하는 최소한의 바탕만 깔아준 것이다.

백승수는 고하늘의 것과는 상반된 방식을 취한다. 드라마에서 1막이라 할 수 있는 분량이 지나가고 나서야 그의 사연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으니까. 건조한 말투와 쉽게 동요를 일으키지 않는 표정 탓에 첫인상은 차가웠으나, 이야기가 전개되고 몇 개의 에피소드를 지나오면서 느껴지는 건 그 안에 들어 있는 뭔지 모를 따뜻한 마음이었다.

시청자들은 백승수의 사연이 더욱더 궁금해질 수밖에. 조금씩 단서들이 나오긴 하나 백승수라는 인물 자체가 속을 내보이는 스타일도 아니고 드라마 또한 그의 사연에만 집중하고 있지 않아, 이야기 속에 자연스럽게 묻어 있는 정도를 훑어볼 따름이다. 그러다 그와 깊은 관계를 지닌 주변 인물들이 등장하면서 그들의 입을 빌려, 현재 사연이 형체를 갖추는 데 박차가 가해진 상태다.

“저같은 사람이 아이를 안아도 되겠습니까”

자신의 권유로 야구를 시작한 동생이 심각한 부상으로 그만두게 되면서 아버지는 쓰러지고, 스스로를 자책하며 이 모든 상황을 홀로 책임져 왔다. 돈만 많이 주면 어디서든,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 하고 효율을 따지며 온 힘을 기울여 냉철하게 굴다가도, 선수들의 아픈 속내에 깊은 연민을 내비치는, 알다가도 모를 그의 모습은 유독 책임감 강한 천성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리고 단장으로서 본격적인 시작을 앞둔 순간, 백승수가 드라마가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자신의 감정을 드러냈다. 그것도 제대로. 다른 이가 건넨 갓난아이를 받아 안으며 뜨겁고 굵은 눈물을 흘린 것. 시청자들이 그간 원래의 모습을 더듬어가며 하나씩 맞춰 온 사연의 조각들이 이 지점에서 비로소 하나의 완성된 장면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하겠다.

스스로 찾아 알게 하는 것, 심지어 당사자들은 제 일만 할 뿐 굳이 드러낼 생각도 없다. 보는 이들로서 이만한 희열이 또 없다. 하지만 이의 전제 조건은 사연을 알아내고 싶을 만큼 해당 인물이 충분히 매력적이어야 한다는 거다. ’블랙독’의 ‘고하늘’과 ‘스토브리그’의 ‘백승수’가 허구를 넘어 실존하고 있는 인물로 느껴질 정도로 성공적으로 구현화됨으로써 한층 더 성과를 발휘할 수 있었던 작전이란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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