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불시착’, 트렌디한 드라마의 영민한 공식 [윤지혜의 슬로우톡]
2020. 02.20(목)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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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사랑의 불시착’은 무엇 하나 빠지지 않는 트렌디한 드라마였다. 각 배역에 배치된 배우들의 면면부터 남북정상회담 이후 눈에 띄게 달라진 북한을 바라보는 시선을 반영한 소재와 이야기, 이 위에 적절히 뿌려지는 자본주의의 화려함까지, 빠짐없이 챙겼으며 로맨스 공식 속 사랑에 빠진 여성에 관한 패러다임의 변화도 놓치지 않았다.

tvN ‘사랑의 불시착’(연출 이정효, 극본 박지은)은 남한에서 손꼽히는 재벌가의 상속녀 윤세리(손예진)가 패러글라이딩을 하다, 드라마의 타이틀 그대로 북한에 불시착하여 만난 북한 고위층의 자제이자 특급장교인 리정혁(현빈)과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다. 이 간단히 요약한 줄거리 하나만으로 우리는 ‘사랑의 불시착’에 트렌디한 요소들이 얼마나 빼곡하게 버무려 있는지 느낄 수 있다.

우선 두 남녀주인공의 배경부터 재미있다. 윤세리는 재벌가의 상속녀인 것도 모자라 자신의 이름을 딴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능력 있는 여자로 자본주의의 핵심 중의 핵심이다. 리정혁도 만만치 않다. 자신에게 속한 이들을 살뜰히 보살피고 위험에 빠진 사람은 그냥 지나치지 않는, 게다가 잘생긴 북한의 중대장인 줄만 알았는데, 알고 보니 총정치국장을 아버지로 둔 북한 고위층의 자제였으니까.

한 마디로, 남한의 자본주의와 북한의 사회주의를 대변하는 각각의 인물이 만나 사랑에 빠진 격이니 상당히 흥미로운 설정일 수밖에. 게다가 남부러울 것 없는 환경 속에서 살던 윤세리의 눈이 우리의 눈을 대변하여, 가장 가깝지만 가장 먼 곳인 북한의 모습을 보고 겪는다. 물론 어디까지나 드라마적 허구가 반영된 것이지만 나름의 시의적절한 의미가 있다면, 우리가 으레 북한을 향해 지니고 있던 판타지가 가미된 두려움이 어느 정도 현실감을 얻게끔 도왔다는 거겠다.

‘사랑의 불시착’은 자본주의를 선보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위험에 처한 윤세리를 구하기 위해 리정혁과 그의 사단이 남한으로 내려와 머무는 대목에서, 그들이 윤세리의 재력이 만들어내는 편리함과 즐거움, 화려함을 누리는 모습을 통해 자본주의 특유의 풍요와 자유를 뽐냈다. 와중 윤세리가 마음껏 사용하라고 건넨 카드를 가지고도 적당한 정도의 욕망만을 실현하는 북한 사람들의 순박함은, 자본주의의 욕망에 치여 사는 우리에게 충분히 주목할 만한 매력이기도 했고.

그리고 로맨스의 비극에 대처하는 여성 등장인물의 모습도 짚어볼 가치가 있다. 리정혁의 약혼녀 서단(서지혜)은 10년을 사랑했던 남자에게 실연의 아픔을 겪은 후 진짜 사랑을 맞닥뜨리나 곧 잃고 만다. 위험에 빠진 서단을 구하려다 죽은 것. 이 비극적인 상황 앞에서 그녀는 잠시 크고 격렬하게 슬퍼했지만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사랑하는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이들에게 복수를 하고 결혼에 생의 희망을 걸었던 지난날을 뒤엎고 비혼을 주장하며 자신만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비극을 피하려 하고 그럼에도 피할 수 없는 비극이라면 새로운 로맨스의 시작을 예상할 수 있는 약간의 빈틈이라도 남겨둔다, 알다시피 이제까지의 로맨스 드라마가 지닌 법칙인 동시에 현재 대대적인 변화를 맞이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사랑의 불시착’이 서단에게 쥐어준 마지막 장면은 이러한 흐름을 흡수한 결과로, 정말 영민하다 생각되는 게 그럼에도 기존의 로맨스가 필요한 시청자들을 위해서 두 주인공의 것은 그대로 두되 서브 주인공인 서단과 구승준(김정현)의 것에만 현재의 트렌드를 반영했다는 점이다.

이토록 트렌디하게 완성된 ‘사랑의 불시착’의 바탕에는, 뛰어난 현실 감각과 이를 이야기로 녹여내는 방식의 영민함, 노련한 필력 등이 있었다. 잦은 결방으로 인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많은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비결이겠다. 뿐만 아니다. 덕분에 서로 사랑하지만 만날 수 없는 생이별의 고통을, 이전에는 추측조차 하지 못했던 그 감정을 드라마를 통해 간접적으로 조금이나마 경험하며 통일을 갈망해야 할 이유를 되새길 수 있었다. 트렌디함이 갖기 어려운 무게감까지 알뜰하게 챙긴, 그야말로 영리한 드라마다.


[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news@tvdaily.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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