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클라쓰’, 꿇은 무릎이 거둔 승리에 관하여 [윤지혜의 슬로우톡]
2020. 03.28(토) 14:00
티브이데일리 포토
[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끝까지 본연의 뚝심을 잃지 않은 JTBC ‘이태원 클라쓰’(연출 김성윤, 강민구 극본 광진)는 자체 최고 시청률을 경신하며 막을 내렸다. 요식업계의 신흥세력 박새로이(박서준)와 기성세력 장대희(유재명)의 대립을 비롯하여 조이서(김다미)와의 로맨스 등이 매순간 탄탄한 긴장감을 실어내 주었고, 이 모든 갈등이 내달린 목적지, 즉, 이야기의 클라이막스 또한 아주 맛깔나게 그려진 결과다.

“고작 이딴 일에 꿇을 무릎, 결국 힘에 눌린 꼴이 아닌가 말야”
장가의 회장 장대희(이하 ‘장회장’)가 그토록 꿇리고 싶었던 박새로이의 두 무릎이 드디어 바닥에 닿았다. 장회장과의 악연이 시작된 지점, 그의 아들 장근원(안보현)과 일으킨 갈등에서도, 두 부자의 계략에 빠져 꼼짝없이 감옥에 갇혀야 했을 때에도 절대 꿇지 않았던 그의 무릎이, 근원에게 납치된 이서의 행방을 알기 위해, 이서를 살리기 위해 꿇려진 것이다.

장회장은 노망 들었다는 소리까지 들으며 말년에 간절히 원했던 것, 새로이의 무릎이, 삶이 어그러지고 무너지게 생겼을 때에도 절대 끄덕 않던 그의 무릎이 ‘고작’ 사람 하나의 목숨 구하겠다고 쉽사리 얻어지는 걸 보며 실소를 터뜨린다. ‘하찮은 무릎’이란 것이다. 이에 새로이는 다음과 같이 응한다. “고작 인질극에 기대서 무릎을 꿇어라. 이 따위 추악한 늙은이를 뒤쫓아 십수년 그 시간이 한스럽기 그지 없다, 이겁니다. 십수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당신을 알았습니다.”

즉, 그 ‘하찮은 무릎’을 받겠다고 아들의 인질극까지 이용하는 작자를 온 생을 걸만한 가치가 있는 최대의 적이라 간주하고 살아온 지난 날이 한스럽다는 거다. 그도 그럴 것이 새로이는 자신과 아버지의 삶을 망가뜨린 장회장에게 복수를 하는 일과 행복을 맞바꾸어 왔으니까. 새로이에게 무릎을 꿇는 행위는 굴복의 의미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장회장에게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불가능할 일이었다.

“불가능한 일들이 있다, 장대희 회장에게 무릎을 꿇는 일이 그렇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천 번이고 만 번이고 너무나도 쉬운 일.” 하지만 본인이 온 생을 걸면서 얻어야 하는 행복은 복수가 아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삶이고 그동안 그럴 가치가 없는 사람에게 삶과 행복을 쏟아 왔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자 주저없이 무릎을 내준다. 그토록 귀하게 지켜 왔던 무릎이 이제 그에게는, 사랑하는 이의 목숨에 비한다면, 장회장의 말대로, 하찮기 그지 없는 것이 되어버린 거다.

흥미롭게도 이야기의 절정에서 보여준 이 장면은 새로이가 IC(이태원 클라쓰)를 세우며 가진, 장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과 신뢰라며, 돈보다는 사람을, 이득보다 신뢰를 중시하겠다는 기조와도 맥락을 같이 한다. 지극히 새로이다운, ‘이태원 클라쓰’다운 클라이막스로, 새로이가 드디어 장회장에게 승리를 거두는 장면으로서도 더할 나위 없다. 이는 이야기의 말미에 등장하는, 새로이에게 무릎을 꿇는 장회장의 모습보다 한층 더 상징적인 승리의 장면이다.

새로이가 이서를 향한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인식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으니, 그야말로 이야기의 모든 면에서 완벽한, 이야기의 완성도를 한껏 높이는 클라이막스가 아닐 수 없다. 설사 그것이 상투적인 결말, 예상 가능한 권선징악으로 결말을 맺었을지라도, 드라마가 혹은 드라마의 주제를 나타나는 주인공이 차근차근 쌓아온 과정에 지극히 충실하고 그를 증명하고 있다면, 더 이상 따질 필요 없는 최상의 결말이다. ‘이태원 클라쓰’가 끝까지 사랑받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리라.

[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news@tvdaily.co.kr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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