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방 사건’, 별 볼 일 없는 치를 악마로 키워낸 것 [윤지혜의 대중탐구영역]
2020. 03.29(일)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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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승리가 불구속 상태에서 무사히 군에 입대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은 꽤나 착잡했다. 활동할 당시에는 미루기만 했던 입대 일정이 오늘의 그에겐 죄의 대가에서 회피하는 방도가 되고 있다는 생각이, 이렇게 어벌쩡 넘어가서 결국 사건이 잊혀질 때 즈음 다시 그 끔찍한 얼굴을 드밀지 모른다는 아찔한 예감까지 들은 까닭이다.

밝혀진 것보다 밝혀지지 않은 것이 더 많고 더 끔찍할까. 사회를 경악시킨 또 하나의 성범죄가 그 윤곽을 드러냈다. ‘텔레그램 n번방 사건’, 인터넷 메신저 텔레그램 내 일명 ‘박사방’이라 불리는 곳을 비롯하여 다수의 공간을 통해 죄질이 나쁜 음란물이 매매형식으로 유포되었는데 그 배경에 미성년자 포함, 다수의 여성들을 협박하여 영상을 제작한 정황 즉, 성을 착취한 범죄적 정황이 있었음을 포착한 것이다.

이 사건을 접한 사람들은 악질 중의 악질의 양상을 띤 범죄에 분노하여, 강력한 처벌 촉구와 함께 해당 범죄자는 물론이고 영상을 구입하여 본 이들의 신상 공개를 요구했다. 그리하여 현재 ‘박사방’을 운영한 조 씨는 성범죄자로서는 최초로 신상이 낱낱이 공개되어, 한 때 포털사이트의 검색어 목록이 그와 관련된 화제로 가득 메워 있었다.

가장 큰 충격은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이란 명칭에 걸맞게, 여성을 자신의 욕망을 해소하는 도구 쯤으로 여기는, 이러한 비인간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통로가 ’박사방’ 하나만이 아니며 이를 이용, 아니 애용하는 사람들 또한 몇십만명에 이른다는 사실이었다. 게다가 이들 대부분은 자신의 행동에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자신이 취하고 있는 성 인식이 얼마나 왜곡되고 비틀려 있는지, 그것의 본질이 지독한 열등감임을 알지도 깨닫지도 못하는 최악의 무지 상태에 놓여 있었다.

그렇게 대해도 되는 사람이 있다며 제 식대로 계층을 나누어서라도 자신의 존재감을 어떻게든 확인하려는 이들은 본인의 입으로 ‘악마’라 하며 뭐라도 된듯 굴지만 결국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열등감으로 가득차 범죄로밖에 풀지 못하는 저급하고 천박한 인간들 중 하나일 뿐인데 이걸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대해도 되는 사람은 없다고, 굳이 남성과 여성 가를 것 없이 스스로의 존재가 중요하듯 타인의 존재도 중요하다는 이 세계의 귀중한 섭리를, 사회가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버닝썬’이란 이름으로 대표되는, 유명 연예인들이 포함된 성범죄 사건을 예로 들어보자. 몇은 처벌을 받았지만 여전히 받지 않은 이들이 존재한다. 덕분에 어리석은 이들은 생각한다. 처벌받은 사람들은 운이 나빴으며, 돈과 뒷배경만 있으면 잘못을 해도 잘만 빠져나가더라고. 결국 이 사회에선 돈이나 뒷배경이 없어 힘을 갖지 못하는 게 죄지 다른 게 죄가 아니며, 한 발 더 나아가 성범죄 또한 힘도 없으면서 제 처신도 제대로 못하는, 당할 만한 여성이 당하는 것이라는 졸렬한 결론에 이르고 마는 게다.

성 착취구조를 가능하게 한 인식이라 하겠다. 이제 이들에게 옳고 그름은 역학관계 안에서 판단할 것으로 자신보다 약하다 여겨지는 대상에게 가하는 폭력은 더 이상 범죄가 아니게 되니, 죄책감이 있을 리 없다. 신상까지 공개하며 사람들의 비난을 한 몸에 받는 중에도 피해 여성들에게 한 마디 사과도 없이, 화제성 높은 이름들을 언급하며 대중의 시선을 돌리는 시도를 보이는 조씨만 봐도 알 수 있다.

작가 허지웅은 ‘텔레그렘 n번방 사건’을 두고 “단지 성교육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 인성교육의 총체적이고 종합적인, 완전한 대실패”라고 했다. 심히 공감하는 바다. 사회의 약한 자에겐 강하고 강한 자에겐 약한 용인과 묵인이 별 볼 일 없는 치들을 악마로 키워냈다. 가해자는 당당하게, 피해자는 피해자일 수 없게 만들었다. 이에 대한 책임을 더는 미룰 수 없다. 정확한 수사와 그에 따른 강도 높은 처벌, 제대로 된 관련법 제정까지 반드시 이루어냄으로써 은연 중에 사람들에게 주입되어 온 비틀린 인식을 개선하는 데 이르기를 간절히 바란다.

[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news@tvdaily.co.kr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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