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의 세계', 그저 불륜드라마가 아니었다 [윤지혜의 슬로우톡]
2020. 05.20(수)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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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실은 보는 내내 아들 준영(전진서)이 걱정이었다. 아빠가 엄마를 폭행하는 장면을 여과없이 목격하고 이 모든 게 복수를 위한 엄마의 계획이란 사실까지 알고 말았다. 서로를 향한 애증 어린 시선이 만들어낸 장면들 속에서 최대의 피해자로 매순간 상처를 받고 있는 준영의 모습은, ‘부부의 세계’가 도대체 무엇이길래, 라는 근본적인 의문을 품게 하기에 충분했으니까.

첫방송부터 불륜이라는 자극적인 소재와 배우 김희애와 모완일 연출의 만남, 그리고 청소년 관람 불가라는 빨간 딱지까지 화제에 화제를 더했던 JTBC 드라마 ‘부부의 세계’(연출 모완일, 극본 주현)가 3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낳으며 대망의 막을 내렸다. 복수에 복수를 더하는 지독한 치정싸움을 일으킨 부부가 결국 자식이 곁을 떠나는 일을 겪게 된다는, ‘권선징악’에 들어맞는 상당히 원론적인 결말이었다.

물론 ‘부부의 세계’에서 부부 간의 신의를 져 버리고 갈등의 계기를 마련한 쪽은 이태오(박해준)였고 그는 그 대가로 이전과 이후의 가정 모두를 잃었다. 하지만 아들 준영의 마음에 입은 상처는 아빠로부터 비롯된 것이라 해도 엄마 지선우(김희애)의 몫이 없다고 할 수 없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이제는 더 이상 부모와 함께 살 수 없다는 사실 자체가, 자녀의 입장으로서는 앞으로 매순간 맞닥뜨려야 할 고통의 한 장면이 되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시청자들이 분통을 터뜨렸던, 아빠와 외도를 버젓이 알면서도 모르쇠로 일관한 것도 모자라 엄마에게 그냥 모른척 해주면 안 되냐는 말까지 한 준영의 모습은 이런 연유에서 탄생한 것이라 보아도 되겠다. 아빠는 바람을 핀 최악의 남자고 엄마는 이런 아빠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온 정신이 집중되어 있다. 양쪽 다 자신을 위한다고 하지만 정작 그 안에 자신을 위한 진정한 배려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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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상황이 거짓이길 누구보다 간절히 바랐을 존재가 아들 준영이었을 텐데, 태오와 선우의 ‘부부의 세계’는 믿음을 무너뜨리고 관계를 깨뜨린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는 혹독한 전쟁을 치르며, 그들의 다음 세대인 아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온전한 가정에서 자라고 싶었을 준영에게, 태오와 선우가 그들의 부모로부터 받았을 고통을 대물림한 것이다. 그리하여 선우는 아내로서, 여자로서 피고인일지 몰라도 엄마로서, 아들 준영에게만큼은 피의자다.

아들을 잃고 나서야 이를 제대로 깨달은 선우는, 자신에게 상처를 입힌 대상을 용서하는 일만큼 용서를 구하는 일 또한 얼마나 어렵고 고된지, 과연 가능하기는 할런지, 깊은 불안함이 내재된 고통을 있는 그대로 감수하며 언제 돌아올지 모를 아들을 기다리고 또 기다릴 뿐이다. 부모로서 자신이 치러야 할 책임, 즉 징벌을 고스란히 받는 것이다. 이로써 온통 깨어진 파편투성이었던 ‘부부의 세계’는 회복의 기점을 맞이하기 시작한다. 물론 이 회복은 각 개인이 맞이하는 것으로, 구태의연하게 재결합 등의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부부의 세계’는 개인과 개인의 삶이 만나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는, 하나의 축소된 세계다. 그렇기에 개인을 생각하는 동시에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태오의 죄는 자신의 욕망에만 충실하여 함께 살아가는 다른 이의 고통은 염두에 두지 않았다는 것이고, 선우의 죄는 그러한 태오의 욕망에 상처를 입은 자신에게만 집중하여 또 다른 이에게 상처를 입혔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세상에 실수 혹은 죄를 짓지 않는 인간은 없으며, 찢어지는 고통과 함께 그 책임을 감당하는 과정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성장한다. ‘부부의 세계’가 그저 그런 불륜드라마로 치부될 수 없는 이유다.

[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니스트 news@tvdaily.co.kr / 사진=JTBC '부부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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