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죽음이 여전히 마음 한 구석에 걸려 있는 까닭 [윤지혜의 슬로우톡]
2020. 07.26(일)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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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우리가 고인(故人)의 죽음을 여전히 마음 한 구석에 품고 있는 건, 아직도 편히 쉬게 할 만한 상황을 맞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불법으로 촬영한 영상물로 고인을 생을 끊을 만큼의 고통으로 몰아넣은 이는 합당한 죄의 대가를 받지 않은 상태고, 피해자가 가해자를 제대로 처벌하지 못하는 세계는 생뚱맞게도 고인의 재산 상속에 관한 즉, 돈 문제로 사람들의 시선을 돌리고 있으니까.

폭력의 역사가 멈추지 않는다. 어느 운동선수는 당한 고통을 호소해도 아무런 반응이 없는 현실에 절망하여 스스로 죽음의 문턱을 넘었고, 어느 권력에 의한 성추행 피해자는 간신히 용기를 내어 고소했으나 피고소인이 극단적인 선택을 함으로써 법의 판단과 처벌을 물을 기회마저 상실할 상황에 내몰렸다. 얼굴을 들지 못하고 당당하지 못해야 하는 건 분명 가해자인데, 폭력, 그것도 성과 관련된 폭력 사건에서는 입장이 뒤바뀌어 버리는 것이다.

결국 피해자만 빠져나올 수 없는 악몽 속에 놓이고, 그러다 보니 폭력을 당해 심각한 상처를 입은 이들 대부분이 가해자에게 응당한 처벌이 주어지길 요구하기보다 피해를 당했다는 사실을 숨기고 고통을 감추려 노력한다. 제 때 치료받지 못한 상처는 곪아터져 언젠가 삶 전체를 뒤덮을 수 있음에도,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넘어가려 노력한다. 아이러니한 일이나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 또한 너무나 타당하다.

우리 사회가 이러한 문제에 있어 가해자로 하여금 온전한 죄의 대가를 치르게 한 적이 별로 없는 까닭이다. 세상과 사람들의 정의에 호소해 보았자 돌아오는 건 말도 안 되게 가벼운 형벌(이마저도 집행유예가 따라 붙는다)과 그에 비해 말도 안 되게 무거운,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다. 자극적인 부분만 확대하여 퍼져 나가는 통에 사람들의 시선은 한 개인의 비극을 가십거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 그럴 만한 사람이 피해를 입는다는 또 하나의 폭력적 굴레를 만들어 씌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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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고인의 용기를 낸 고소는 대중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스타로서 다소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것으로, 그러했기에 더욱 의미 깊었고 상징적이었다. 이 세상 어디에도, 어느 나라의 법에도 결별을 요구했다는 이유로 상대에게 폭행을 당하고 내밀한 개인사가 담긴 동영상을 유포하겠다는 협박을 받아도 되는 사람은 없으며, 이는 처벌을 받아야 할 명백한 범죄 행위다. 이슈가 되어 많은 이들의 입방아에 오를 걸 알면서도 동일한 피해가 일어나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세상에 드러냈으니, 재판부는 이에 합당한 판결을 내릴 책임이 있었다.

하지만 상대가 1심에서 받은 선고는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 모든 걸 내던질 각오로, 그리고 실제로 내던진 고인의 마음은 얼마나 참담했을까. 그나마 항소심에서는 징역 1년과 법정구속을 받았으나, 동영상 촬영 부분의 불법성에 관해선 고인의 적극적 제지가 없었던 걸로 보인다는 모호한 이유로 무죄로 보고 있으니, 마지막까지 피해자의 편이 되어야 할 법과 정의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세계에 고인은 여전히 절망 중일지도 모르겠다.

동시에 우리의 것이기도 한 이 절망은 법과 정의가 온전한 답을 하기 시작할 때야 비로소 출구를 맞이할 텐데, 아직 앞길은 어둑하다. 세계 최대 아동 성착취물 사이트를 운영해 미국의 추적을 받아온 어느 한국인은 때아닌 자국의 보호를 받아 고작 1년 6개월이라는, 말 그대로 솜방망이 처벌만 받게 되었다. 이것이 우리의 세계에 가져올 영향은 범죄와 범죄로 인한 피해를 가벼이 여기게 되는 것, 그 이후의 것은 상상하고 싶지도 않을 정도로 끔찍하다.

바라는 바는, 고인과 관련하여 남아 있는 대법원에서의 최종 판결만큼은 피해를 입은 고통을 헤아리는 결과가 나오길, 우리가 법과 정의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게 온전한 응답을 해주길, 그리하여 해결의 과정을 시작도 하기 전에 본질부터 흐려지고 있는 오늘의 수많은 폭력의 문제들 또한 제 방향을 찾아 나아갈 수 있길. 변화는 한 걸음부터다. 단순히 고인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수없을 유사 범죄의 피해자들을 위해서, 더 이상의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포문을 제대로 열어달라는 것이다.

[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니스트 news@tvdaily.co.kr, 사진 =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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