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악' 이정재의 품격 [인터뷰]
2020. 08.15(토) 11:00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이정재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이정재
[티브이데일리 최하나 기자] 배우들은 모두 자신이 맡은 캐릭터에 대해 연구한다. 이는 시나리오에 평면적인 글로만 표현돼 있는 캐릭터를 작품에 입체적으로 담아내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과정이다. 모든 배우들이 그런다지만, 유독 배우 이정재는 정말 지독하리만치 자신의 캐릭터를 연구하고 또 파고드는 타입이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그렇게 했기 때문에 이정재가 연기한 캐릭터들이 지금까지도 회자될 정도로 강한 인상을 남길 수 있었다. 그 노력들이 캐릭터뿐만 아니라 배우로서 이정재를 이루는 품격이 될 수 있었다.

지난 5일 개봉된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감독 홍원찬·제작 하이브미디어코프, 이하 '다만악')는 마지막 청부살인 미션 때문에 새로운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인남(황정민)과 그를 쫓는 무자비한 추격자 레이(이정재)의 처절한 추격과 사투를 그린 하드보일드 추격액션이다. 이정재는 극 중 형의 복수를 위해 인남을 추격하는 킬러 레이 역을 맡아 연기했다.

'다만악'은 영화 '관상' '암살'에 이어 이정재가 악역을 연기한 작품이다. 킬러, 악역 등 장르물에서 익숙하게 봐왔던 설정의 캐릭터인 레이는 겉으로만 봤을 때에는 이정재의 작품 선택 기준에 조금 벗어난 인물이었다.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이 늘 기준이었던 이정재가 레이를 선택한 이유는 자신의 상상력을 가미할 여지가 많았기 때문이다. 시나리오에 레이가 어떤 인물이라고 설명하는 부분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고. 이정재는 "그렇다면 조금 더 넓은 생각을 가지고 캐릭터에 상상력을 가미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면서 "시나리오를 한 번 더 보면서 레이가 어떤 모습으로 화면에서 등·퇴장을 해야지 이 영화에서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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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의 복수라고 하기엔 레이가 왜 그토록 인남을 추격하는지에 대해 관객을 설득시키는 게 중요할 거라고 생각했다고. 이에 이정재는 "레이가 인남을 계속해서 압박을 하면서 극의 서스펜스가 점점 강화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려면 레이는 우리가 보지 못했던 폭력성과 서늘함이 있어야지 계속 추격해 나가는 레이의 모습에 공감하시지 않을까 싶었다"고 했다.

레이의 광기를 표현하기 위해 이정재는 직접 인물의 스타일링을 잡아나갔다. 이정재는 목을 뒤덮은 문신과 칼라풀한 의상 등 파격적인 스타일링으로 레이를 조금씩 구체화시켰고, 직접 감독과 스태프들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하며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일반적인 킬러를 생각하며 무색무취의 레이를 구상했던 감독이 이정재의 프레젠테이션에 놀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에 이정재는 "감독님에게 왜 이렇게까지 스타일링을 해야지만 하는 이유를 설명드렸다"면서 "레이가 무슨 생각과 어떤 목적성을 가지고 추격하는지에 대해 설명하지 않아도 겉모습만 보고 '그럴 것 같다'라는 믿음을 줘야 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이정재는 치열한 연구 끝에 자신의 생각대로 레이의 외피를 완성했고, 그의 의도는 정확하게 맞아 들었다. 형의 장례식장에 부추와 흰 롱코트와 선글라스를 끼고, 조문하러 온 사람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과한 치장을 한 레이의 모습은 보고 있기만 해도 내재된 광기가 감지될 정도다. 형의 복수는 살인을 위한 명분일 뿐, 애초에 레이에게는 중요하지 않았다. 살인 행각을 즐기는 레이에게 형의 죽음은 때에 맞게 걸려든 먹잇감이었을 뿐이다. 이정재가 만들어낸 외형과 아우라가 설명 없이도, 광기와 살인에 대한 집착으로 가득한 캐릭터를 납득시킨다.

레이의 등장신에 대해 "저에게는 이 비주얼로 모든 걸 한 번에 설명해야 하는 도전이나 다름없었다"면서 "일반적인 캐릭터였으면 천천히 서사를 쌓아가는 형식이었지만, 레이는 첫 장면에서 다 끝내야 했다. 첫 장면에서 완벽하게 해결을 하고 가야지 안 그러면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절제된 연기도 레이의 캐릭터에 숨결을 불어넣은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였다. 이정재의 절제된 표정과 몸짓 그리고 일정한 목소리 톤 등이 과한 스타일링과 조화를 이루면서 레이가 강렬한 악역으로 완성될 수 있었다. 이에 대해 이정재는 "이렇게 과한 캐릭터에 뭔가를 더 하면 과해질 것 같았다. 과한 느낌보다는 독특한 것 같은데 가만히 있는 모습에서 섬뜩함과 살기가 보였으면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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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영화에서는 레이의 캐릭터만큼이나 액션 신도 압도적이다. 여타 액션 영화들에서 무수히 다뤄진 천편일률적인 액션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번 영화는 새로운 기법을 사용했다. 바로 스톱모션이다. 스톱모션 촬영기법으로 배우들이 실제로 서로를 타격하는 모습을 담아내 액션신에 생동감을 불어넣었다. 이는 여타 액션 영화들과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가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역대급 액션 신은 배우들과 스태프들의 완벽한 협업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현장에서 돌발적으로 나오는 아이디어를 서로 공유하고, 기존의 것에서 더 좋은 것으로 수정하면서 액션신을 만들어냈다. 서로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던 일이나 마찬가지였다.

또한 '신세계' 이후 재회하게 된 황정민과의 연기 호흡이 액션 신을 포함한 영화의 완성도를 한층 더 끌어올렸다. 이정재는 "리허설 한 번 해보고 첫 번째 테이크를 갔을 때 말하지 않은 건데 서로 다른 것이 나올 때가 있었다. 이미 '신세계' 때 그러한 작업을 해봤기 때문에 설명이 필요 없다"면서 "한 커트를 찍어놓고서 뭔가 부족한 부분이 보이면 그때 더 이야기해서 만들어 나갔다. 우리가 나아가는 방향은 같다"고 황정민과의 연기 호흡에 대해 이야기했다.

'관상', 그리고 '암살'이 개봉했을 때마다 '이정재의 역대급 악역 연기'라는 호평이 이어졌다. '다만악'으로 또 다시 악역 연기의 정점을 경신한 이정재다. 그 이면엔 캐릭터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와 완벽한 이해, 깊은 내공의 연기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매번 예상을 뛰어넘는 연기로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만드는, 이정재의 품격이다.

[티브이데일리 최하나 기자 news@tvdaily.co.kr/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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