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세’, 영화 안팎에 고스란히 담긴 우리의 현실 [윤지혜의 슬로우톡]
2020. 08.25(화)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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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하나의 비난 여론이 거센 형태로 형성될 때, 이를 구성하는 사람들 중 대다수는 자신이 무엇 때문에 손가락을 들었는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제대로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저 자극적으로 드러난 이미지만을 보고 형성된 편견과 선입견으로 자신만의 옳고 그름을 내세울 뿐인데, 이것이 우리가 종종 맞닥뜨리곤 하는 실제적 현실이라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영화 ’69세’에 일부 사람들이 보인, 몰지각하다 싶을 만큼의 행동이 그 대표적 예다. 영화 ‘69세’는 주인공 효정(예수정)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 남자 간호조무사에게 치욕적인 일을 당했음에도, 효정은 69세, 간호조무사는 29세라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경찰에게까지 사건 취급조차 받지 못하는 상황에 놓이나 끝끝내 물러서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이에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이 작품의 소재나 설정을 트집잡으며 제대로 보지도 않고 대거 낮은 평점을 준 것.

소설에나 나올 법한 비현실적 소재이자 설정이라는 주장인데,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것을 모르고 하는 소리라면 그나마 낫겠다. 아마 이들은 실제 사건에 대한 반응도 비슷하게 보였으리라. 영화를 직접 본 관객들이 이 비루한 처사를 괘씸하게 생각하여 연이어 높은 평점을 주며 일단락 되긴 했다만, 평소 우리 사회가 소외 계층이 겪는 고통에 얼마나 공감대가 떨어지는지, 그리고 공통의 사회적 이슈들에 반응하는 도덕적 감수성 또한 그리 높지 않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만들었다 할까.

무엇이 문제일까.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미 자신만의 고착된 시선을 가진 영역에 대해서는. 본인은 영원히 그곳에 해당되지 않을 것마냥 제대로 알려고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고통의 근원을 제대로 파악할 리 없고, 그러니 이슈의 한 단면 만을 보고 판단해버리는 잘못을 저지르고 만다.

영화를 제대로 접했다면 그 이면에 짙게 깔려 있는, 단순히 장년 여성에게만 국한되지 않은, 장년 여성으로 대표되는 소외 계층, 흔히 ‘그래도 되는 사람들’에게 해당하는 폭력적인 시선을 읽어내지 않을 수가 없고, 자신이 바로 그러한 눈 중의 하나임을 깨닫지 않을 수 없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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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세’의 효정의 주변에는 이런 어긋난 시선들을 가진 사람들로 가득했으니까. 엄연히 범죄의 피해자인 효정은 노인이라는 이유로, 범죄좌와의 나이 차이를 이유로 주변 사람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사회 공권력에게도 치매 환자로 매도당하고 그녀가 당한 고통은 하나의 웃음거리로, 아주 쉽게 전락되어 버렸다. 사람들에게 그녀는, 자신과 동일한 삶을 살아가는, 동일하게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었던 고로, 그녀의 삶이 어떤 고통을 토로하고 있는지 제대로 듣지도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69세’에 담긴 이야기를 제대로 보지도, 듣지도 않았으면서 표면적인, 그것도 그간의 왜곡된 시선에서 해석된 이미지만을 가지고 판단해 버린, 일각의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행태다. 그리고 우리가 일상에서, 우리와 다른 영역, 겉보기에 좀 더 약하고 좀 더 결핍되어 보이는 영역에 우리도 모르게 보이는 어떤 반응들과도, 어쩌면 닮아 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사회적 약자, 소외 계층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말고 제대로 보고 듣고 알아야 할 이유는 딱 하나다. 어떤 드높은 도덕성을 고민할 것 없이(기대할 수 없기도 하고), 우리들 중 어느 누구도 약자가 되지 않는다는 법은 없고 이미 어느 부분에서는 약자이기도 하다는 것, 그리하여 그들을 지키는 게 바로 우리 자신을 지키는 일이라는 것. 영화 ‘69세’와 해당 작품을 두고 일어난 일련의 우매한 소동이 우리 모두에게 시사하는 바가 아닐까.

[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니스트 news@tvdaily.co.kr, 사진 = 영화 '69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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