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직업을 좋아하세요? [연예다트]
2020. 09.12(토) 13:45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슈만 클라라 박은빈 김민재 김성철 박지현 이유진 배다빈 예수정 김종태 서정연 최대훈 양조아 안상은 이지원 길해연 인물관계도 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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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브이데일리 이기은 기자]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에는 칼날 앞에서 희생을 택하는 것은 쉬운 일이라는 대목이 나온다. 즉 한 순간으로 끝나는 숭고함보다 어려운 것은 일상 속 희생을 유지하는 일이다. 세상의 업도 마찬가지다. ‘나도 하기만 하면 잘할 것’이라는 기만은 무용하다. 그런 시련을 막론한 채 지속하는 것이 재능이기 때문이다.

SBS 월화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극본 류보리·연출 조영민)는 사람들의 업에 관한 한국자본주의 현실을 그리는 드라마다. 경영대를 나와 뒤늦게 음대에 진학한 만학도 채송아(박은빈)는 만년 음대 꼴찌다. 넉넉하지 않은 집안 사정상 공무원 시험을 치라는 압박에 시달리며, 설상가상 가장 좋아한다고 자부했던 바이올린 틈새에서 소리가 새는 줄도 모르는 자기 안의 무지(無地)와 마주해야 한다.

생계를 위해 성과주의적으로 피아노를 쳐야만 했던 클래식학도도 있다.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2위를 차지한 피아니스트 박준영(김민재)은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시달릴 만큼은 유명하지만 스스로 업계 최고가 될 수 없음을 인지한다. 그런 준영과 함께 유학 시절을 보낸 재벌가 손녀 이정경(박지현)은 화려한 뒷배경에도 불구하고, 준영만큼도 성장하지 못한 자신의 음악적 부진을 자책하기에 이른다.

실제로 드라마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박준영을 향한 채송아, 이정경의 이율배반적 태도다. 음악을 흠모하는 두 여자에게 국제적 피아니스트 궤도에 오른 박준영은 매력적인 이성이지만,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진 질투 기제이기도 하다. 원하지 않는다면 들끓지도 않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기형도, ‘질투는 나의 힘’)라는 시 구절처럼 드라마 속 이정경이 음악인으로 성장한 박준영에게 퍼붓는 울화의 키스는, 질투나 결핍의 다른 이름이 곧 열망이라는 사실을 알게 한다.

숱한 직장인들이 일터 안에서 이성과 감정, 상승과 추락, 유능과 무능, 잠재력과 한계가 부딪히는 순간을 경험한다. 그토록 울퉁불퉁한 자기 안의 부침이 드라마 같은 파워풀한 장면으로 공론화될 일은 없겠지만 누구나 치열한 적자생존을 거치며, 모차르트를 시기했던 살리에리의 심정과 역사를 십분 이해하게 됐을 것이다.

급기야 자본주의 사회의 능력은 개인의 노력이나 실력만으로 정산되지 않는 법일 테다. 영어교육학을 전공했다는 A씨(女, 28)는 강사로 근무한 입시 학원에서 급여 문제로 속앓이를 했다. “(원장이) 매달 정해진 액수보다 미묘하게 몇 만 원씩 덜 입금하거나 날짜를 미루는데, 사람 봐 가면서 돈 장난질을 친다는 느낌이라 무척 속상했죠. 저와 비슷한 시기에 들어온 남자 동료에겐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다더라고요”. A씨는 이 같은 불합리를 힘없고 ‘빽’없는 어린 여자로서의 디메리트로 판단했다. 의기소침해진 그가 원하는 것은 블라인드 서류·시험·면접의 법제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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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하는 의사 파업에 더불어 의대생들의 올해 국가고시 응시율은 단 14%로 집계됐다. 대한의사협회 홍보물에는 ‘생사를 판가름할 진단을 받는다면 어떤 의사를 고르겠냐’는 질문과 함께 ‘매년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으려 학업에 매진해온 의사’ ‘성적이 모자라 추천제로 입학한 공공의대 의사’라는 의도적인 보기란이 삽입됐다. 이는 의사들의 학창시절 보상심리가 결국 의료 파업까지 초래한 것 아니냐는 대국민 비난으로 이어졌다.

‘전교 1등’이라는 어휘 선택의 민망함과 별개로, 각종 지표 속에서 뛰어난 실력을 증명한 한국 의료진은 매 순간 고난이도 격무를 헤쳐나가고 있다. 그렇지만 확실한 것은 대형 병원, 반도체, 고속도로, 다리로 이어지는 현 대한민국 경제는 1등뿐 아닌 상·중·하위권들의 피땀까지 전량 투입된 국민 결과물이라는 사실이다.

머리의 일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손의 일을 하는 사람이 있고 발의 일을 하는 사람이 있다. 중요한 것은 머리의 일을 하는 사람이 발의 일을 하는 사람의 노동 시련을 간과하거나 그들을 발밑으로 밀어내지 않는 선택일 것이다. 사회 계급 격차와 무관하게 모든 밥벌이는 누구에게나 존중받아야 할 신성한 루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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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브이데일리 이기은 기자 news@tvdaily.co.kr / 사진=SBS,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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