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디바 [무비노트]
2020. 09.26(토) 14:36
영화 디바 결말 신민아 이유영 개봉
영화 디바 결말 신민아 이유영 개봉
[티브이데일리 이기은 기자] 세상엔 여왕벌을 자처하는 이들이 있다. 첫 직장의 선배 A(女, 당시 29)는 이성 여럿과 동시다발 관계를 맺곤 했다. 본래 남자친구가 지방 국회의원 아들이라고 했는데 당시 그는 마감기간마다 팀 전원에게 음식, 케이크 같은 것들을 보내주는 정성이 남달랐다. 반면 A는 취재원으로 만난 변호사와도 ‘썸’을 타고 있었고 유명 바둑기사와 결혼한 다른 에디터를 독촉해 바둑기사 남성을 소개 받기도 했다.

리즈시절 자신이 가진 젊음, 인프라까지 전량 동원해보는 A는 좋게 말하자면 야심가였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A의 화수분 같은 이성애 욕구가 신기할 따름이었다. 내가 놀란 일은 따로 있다. 남자들의 평범한 습성상 당시 타팀 직원 B(男)가 나를 타깃으로 찍은 일이 있었는데 그는 문자와 데이트 신청에 이어 회식에서도 내게 마음이 있음을 선포했다. 이를 알게 된 A의 심기가 급격하게 불편해졌다. 막상 자신에겐 관심을 드러내지 않았던 이성 동료가 다른 이에게 다가가는 상황이 마뜩치 않았던 것일까. 그 후부터 A는 B가 없는 자리에서 그의 특질을 험담하기 시작했다. 그건 어쩐지 나를 향한 소소한 공격으로도 느껴졌다.

그래서 내가 이 피로를 어떻게 일단락 지었을까. B에겐 정중한 거절 의사를 밝힌 뒤 A의 자존심을 올려주는 무수리의 길을 걸었다. 뷰티팀에 협찬으로 들어온 디올 파운데이션, 매니큐어를 가져다 데이트 약속을 잡은 A에게 발라주기도 했다. 나는 양자택일이라면 여자와 연대하는 편이거니와 집단 내에서 멘탈이 가장 극심히 흔들리는 쪽에 바투 서곤 하는 습성이 있다. 가령 나는 A가 언제나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는, 당시 삶의 힘듦을 일정부분 이해하고 있었던 것 같다. 스무 살에 상경한 그가 겪었을 대학교, 타지살이, 사회생활은 매 순간이 거의 싸움이었을 것이다.

영화 ‘디바’(감독 조슬예·제작 올㈜)는 다이빙계의 여왕벌 이영(신민아), 업계 동료이자 절친 수진(이유영)의 심리 줄다리기를 호러 소재로 변주한 영화다. 이 같은 투톱 디바 간의 스포츠 경쟁담은 일본 발레 만화 ‘유리가면’이 원안을 형성하다시피하며 인기몰이를 했는데, 아무래도 여자들 관계의 본질이란 감정적 뒤끝에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술자리나 우격다짐을 통해 있던 일도 없던 일이 되는 것이 일부 단순한 남자들의 세계라면 여자들의 감정풀이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국어사전 속 아녀자의 유의어는 소인(小人)으로 기재돼 있다. 예로부터 조상들이 속으로 곱씹는 감정을 계집의 마음이라 속단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여자들의 한이 도무지 그 깊이를 잴 수 없는 꼼꼼한 심연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디바’가 공들인 물 속 다이빙 풍경은 여자들의 너울진 감정을 시각화한 스크린 예술로 완성됐다.

비슷한 맥락에서 내가 가장 흥미를 느끼는 한국 영화는 ‘여고괴담’이다. 서양인들이 전기톱을 들고 쏘다니는 정체불명 이웃 남자, 파이 굽는 가정부와 식탁 섹스를 벌이는 중산층 남편을 지하실 저장고로 몰아넣는다면, 아시아 쪽의 알레르기 요인은 학교로부터 비롯될 수 있다. 미로 형태의 나무 복도나 돌계단, 시퍼런 청록색의 옥상 난간은 호러 미장센으론 안성맞춤이지 않은가. 그런데 왜 하필 아이들의 주거지인 학교가 공포의 상징이 됐을까. 대한민국처럼 고속 성장해 온 사회구성원들의 두려움은 줄 세우기 식의 경쟁 시스템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디바’의 이영, 수진은 누구보다 서로를 아껴온 친구관계였지만 끝내 우월의식과 패배감이라는 이중 덫을 뛰어넘지 못한다. 이는 물론 사회문화적으로 자리 잡은 서열 콤플렉스가 작동한 결과다.

한편으로 글 쓰는 직군을 선택한 이래 나는 쉼 없는 쓰기 노동으로 정신이 약간 혼탁해졌다. 공교롭게 이른 나이에 결혼을 한 C(女)에게 오랜만의 연락을 받았다. 친구는 시댁 보기에 아이도 직장도 없는 현 상황이 가시방석이라며 “재택 일하는 네가 부럽다”고 했다. 듣고 보니 C 입장에서 시댁에 적절히 체면치레할 일이란 게 내 현 직군 정도라는 것이다. 시집도 못 간 내게 씁쓸함마저 안기는 자들이 이렇게 허다하다…는 건 농담이다. 그리하여 내가 요즘에서야 깨닫는 건 현관문을 열고 보니 305호도 개똥밭, 501호도 개똥밭이라는 진리다. 누구나 자기 선택에 대한 명암을 치르는 것이 이승의 대단한 본질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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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브이데일리 이기은 기자 news@tvdaily.co.kr / 사진=포스터, 영화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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