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담비'는 어떤 식으로든 성장한다 [윤지혜의 대중탐구영역]
2020. 10.15(목)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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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소설가 김연수의 책 ‘소설가의 일’에 이런 구절이 있다.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다면 상처도 없겠지만 성장도 없다. 하지만 뭔가 하게 되면 나는 어떤 식으로든 성장한다. 심지어 시도했으나 무엇도 제대로 해내지 못했을 때조차도 성장한다.” ‘2020 올해의 브랜드 대상’에서 멀티테이너 부분을 수상한, 가수이자 배우인 ‘손담비’를 보며 새삼 떠올려 본다.

배우가 되고 싶었던 그녀에게 먼저 열린 문은 가수였다. 솔로로 데뷔하기 직전 잠시 몸 담았던 그룹 ‘에스 블러쉬’에서는 ‘It’s My Life’란 곡으로 빌보드 핫 댄스 클럽 플레이 차트 상위권에 올랐고, 2007년 싱글앨범 ‘Cry Eye(크라이 아이)’를 내며 본격적으로 등장할 때는 댄스와 퍼포먼스에 능하다고 여자 비라는 별칭까지 얻었으니까.

가수로서의 가능성이 배우로서의 것보다 앞서 움 트고 돋아난 경우로, 여기까지만 보면 운이 좋았구나 싶으나 모르고 하는 소리다. 물론 운도 중요하지만 여기엔 손담비 특유의, 끊임없이 하고 또 하여 결국 해내고 마는 근성이 큰 몫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그녀는 데뷔 전 댄스 선생님으로부터 소질이 없으니 그만 두라는 소리를 들은 바 있는데(놀랍게도), 그 때 이를 악 물고 더 악착같이 연습하여 ‘가수 손담비’가 되기에 이르렀다고.

‘미쳤어’에 이어 ‘토요일밤에’가 대성공을 거둔 이면에는 그러한 손담비의 피땀 어린 노력이 있었던 거다. 인생은 참 흥미로운 게 솔로 여성 가수로서 명실상부한 자리에 오르자 열리지 않을 것 같던 배우의 문이 슬그머니 그 틈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첫 드라마임에도 불구하고 무려 주연으로 섭외가 되었다. 가수로서 얻은 스타의 후광이 만들어낸 슬그머니라 그런지, 스케일부터 남달랐다.

결과는 그리 좋지 않았다. 처음 하는 도전인 데다가 자신의 영역 밖의 일이니 어쩌면 당연했다. 하지만 이어진 몇몇 작품들도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면서 설상가상으로 2, 3년의 공백까지 더해진다. 그녀로서는 배우의 길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들어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으나, 역시나 그녀는 좀 더 버티는 쪽을 선택했다. 손담비 고유의 근성이 다시 한 번 발휘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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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오래지 않아 ‘동백꽃 필 무렵’의 ‘향미’를 만난다. 특정 배우만이 할 수 있는 배역이 따로 있는 건 아니지만, 때때로 어떤 배역은 특정 배우를 만나서 다행인 경우가 있다. 향미가 그랬다. 손담비만이 할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손담비여서, 언젠가 맞닥뜨릴지 모를 자신에게 들어맞는 배역을 위해 그간 꿋꿋이 연기력을 쌓아오며 버텨온 손담비를 만난 덕에, 향미는 단편적인 형태가 아닌, 깊이와 너비를 지닌 한층 더 생생한 모습으로 구현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알다가도 모를 속을 지니고, 상대의 마음이 뒤집어지든 말든 얄미운 말들을 톡톡 내뱉는 향미를 어느 순간부터 애틋하게 여길 수 있게 되는데, 향미를 담아내는 손담비의 시선을 통해 향미 인생의 전 서사, 드라마에 보여지지 않은 순간들까지 이해하게 된 까닭이라 하겠다. 손담비를 통해 몸과 영혼을 얻은 허구의 인물 향미도 향미지만, 배우에게 이만큼의 흡족하고 뿌듯하고, 짜릿한 경험이 또 있을까.

비로소 제대로 된, 배우로서의 표식을 받은 거니까. 이는 그녀가 눈에 보이지 않는 성과에도 멈추거나 포기하지 않고 무언가를 계속 시도하고, 하고 또 하며 버텨온 결과다. 무엇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다 생각했을 그 순간에도 단지 눈에 보이지 않았을 뿐, 그녀의 내면에선 무언가가 지속적으로 자라고 있었다는 이야기. 배우로서의 첫 훈장을 얻고 멀티테이너로서 이제 막 움을 틔우기 시작한 그녀가 어디까지 성장하고 또 확장해갈 지는 미지수다.

[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니스트 news@tvdaily.co.kr, 사진 = DB, KBS2 '동백꽃 필 무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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