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도 없이' 유재명의 진심 [인터뷰]
2020. 10.26(월) 09:00
소리도 없이 유재명
소리도 없이 유재명
[티브이데일리 최하나 기자] 질문 하나하나 받아 적으며 대답을 신중히 골랐다. 한두 번 하는 인터뷰도 아닌데 매번 다른 답을 내놓으려는 그의 태도에서 얼마나 이 행위를 진심으로 여기는지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 진심은 배우 유재명이 어떤 캐릭터, 작품을 하든 간에 믿고 볼 수밖에 없는 그의 이름값이 되었다.

최근 개봉된 영화 '소리도 없이'(감독 홍의정·제작 루이스픽쳐스)는 '소리도 없이'는 납치한 아이를 맡기고 죽어버린 의뢰인으로 인해 계획에도 없던 유괴범이 된 두 남자의 위태로운 이야기를 그린 영화로, 유재명은 극 중 살기 위해 누구보다 신실하고 근면 성실하게 범죄 조직의 뒤처리 일을 하는 인물인 창복을 연기했다.

유재명은 '소리도 없이'가 자신에게 "운명처럼 왔다"고 표현했다. 마치 종교의식을 준비하듯 경건한 마음으로 시나리오를 읽었다고. 유재명은 "한줄한줄 읽는데 지문이 굉장히 많았다. 읽다 보니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 낯설었다가 기묘해지고 기묘했다가 충격적이었다. 중반 이후로 이야기들이 예상할 수 없는 라인으로 흘려가면서 엔딩이 펼쳐지는데 감독님이 뭐하시는 분인지 궁금해졌다"고 말했다.

기묘한 시나리오의 매력에 끌렸지만, 유재명이 '소리도 없이'를 선택한 건 현실에 있었다. 유재명은 "낯설고 기묘한 이야기의 영화는 많다. 다만 이 영화는 지금 현재의 모습을 영화에 잘 투영해서 관객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영화라고 생각해서 선택했다"고 했다.

유재명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가 된 '현실'이라는 키워드는 창복을 표현하는 데 있어 핵심이기도 했다. 영화에서 창복(유재명)과 태인(유아인)의 전사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유추할 단서만 주어질 뿐 명확하게 그려내지 않았다. 평소 인물의 전사를 중요시하게 생각하는 유재명에게도 이 부분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었다. 결국 그가 내린 결론은 창복에게 전사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지극히 현실만 살아가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지난 삶의 궤적과 미래의 계획은 중요하지 않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것. 유재명은 창복은 현재가 가장 중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단다. 그는 "캐릭터의 전사는 중요하지만, 우리 영화는 어떠한 설명도 하지 않는다. 인물 모두 현재가 중요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게 우리 영화의 매력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현실' '현재' 말고도 창복을 이루는 중요한 키워드가 하나 더 있다. '평범'이다. 범죄물이라면 응당 주인공이 가져야 할 덕목 중 하나인 신념이나 목표가 창복에게는 없다. 그냥 열심히 계란을 팔고, 주어진 일을 성실히 수행하고, 종교를 열심히 믿는 것이 다인 사람이다. 유재명은 창복의 이 평범성이 가장 어려웠다고 했다. 그는 "모든 극화된 이야기는 극성을 띄는데 이 인물은 극성이 있지만 평범한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창복에게 이 '평범성'은 그가 극의 서사를 이끌고 나가는 데 있어 반드시 수반돼야 했던 요소 중 하나였다. 평범하고 유머러스한 창복은 관객이 스토리에 거부감 없이 녹아들고, 그와 태인이 하는 범죄 뒤처리에 대한 선악 판단을 유보하게 만들고, 극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인 선악의 모호함에 이입하게 만드는 중요한 역할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유재명은 "친근하고 불편하지 않게 이야기를 끌고 가야햐는 부담이 있었다. 관객 분들에게 '같이 가보시면 재밌을 거예요'라고 끌고 가는 게 제 몫이었다. 무겁지 않게 너무 진지하지 않게 연기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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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만 말하자면, 유재명의 의도는 정확하게 맞아 들었다. 영화 초반 수더분한 모습으로 계란 두 판을 사겠다며 1만 원을 주는 사람에게 "8000만 원입니다"라고 너스레를 떠는 창복의 평범한 모습은 관객들을 무장해제시키는 힘이 있다. 그 힘은 관객들로 하여금 스토리에 계속 몰입하게 만들고, 태인과 창복이 선인지 악인지 헷갈리게 하고, 창복의 결말 이후 펼쳐지는 아이러니의 향연에 영화의 메시지들을 끝난 뒤에도 계속 곱씹게 만든다.

유재명은 이에 대해 "범죄를 다루는 영화들이 굉장히 많지 않나. 그런 영화들을 보다 보면 영화적 관성에 따라서 스토리가 어느 지점부터 휘몰아치는 구조라면, 이 영화는 그 경계에 항상 머물러 있는 영화라고 생각했다"면서 "시체 뒤처리를 한다고 해서 나쁜 사람이라는 전제도 없는 것 같다. 창복과 태인에게 이 일은 나쁜 일이 아니다. 시체를 잘 묻어주고 명복을 비는 일도 소중한 일이다. 누군가가 해야 하는 일이니까. 그래서 두 사람을 마냥 나쁜 사람이라고 할 수 없는 지점이 있다"고 했다.

이어 그는 "매일 엄청난 양의 정보를 접하다 보니 충격적인 사건에 대해서 무감각해지는 사회에서 살지 않나. 자연인 유재명은 영화보다 현실이 더 무섭다고 생각한다. 저희 영화는 허구다. 영화를 통해서 현실을 적확하게 비추는 게 어떻게 보면 좋은 작품이라면, 많은 분들이 볼 수 있도록 재밌고 분명한 메시지를 보내는 게 '소리도 없이'인 것 같다"고 했다.

"'소리도 없이'라는 영화는 당신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어떤 양심과 어떤 선택으로 그 경계에 머물러 있는지 물음을 던지는 영화에요. 내 개인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집중하는게 중요하다고 말하는 영화죠."

운명처럼 다가온 '소리도 없이'를 관객에게 떠나보낸 유재명은 또 다른 작품과 대중과 만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매 작품마다 현실감 넘치는 연기로 캐릭터뿐만 아니라 작품의 완성도까지 보장하는 유재명. 이는 매 작품마다 진심으로 대하는 자세가 만든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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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브이데일리 최하나 기자 news@tvdaily.co.kr/사진=영화 '소리도 없이',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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