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후조리원’, 고달프고 잔인하고 구차한 과정의 유의미한 해석 [윤지혜의 슬로우톡]
2020. 11.26(목)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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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기에 엄마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 유대인 속담에 충실했던 우리의 엄마들은 대부분 자녀들을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했다. 즉, 우리는 각각 엄마의 삶을 먹고 자라나, 희생한 엄마의 삶까지 살아내려 노력하고 있고 그 결과일까. 부모로서의 삶보다 우리 자신의 삶이 더 귀해지고 중요해져서, 결혼과 출산을 두려워하는 세대가 되었다.

부모의 세대에서 부와 모의 사회적 위치는, ’바깥 양반’과 ‘안 사람’이라는 명칭처럼 명확하여 갈등이 일어날 틈이 없었다. 아빠는 바깥에 나가 일을 해서 가족을 부양하고, 엄마는 안에서 아이들을 양육하는 것. 사회가 손에 쥐어준 이것은 표면적으론 옳아 보이고 견고해 보였으나, 부모들의 희생으로 누구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며 자라난 남녀평등의 사고방식으로 균열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우리 엄만 그 사람 뒤치다꺼리하고 저 키우느라 엄마 인생을 제대로 생각해본 적이 없대요”
상대적으로 저평가 되고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던 엄마의 안에서의 삶이 부각되었고 오늘에 이르러는 바깥과 안의 구분조차 희미해지고 있다. 오래 지속된 틀이 그의 적확성에 의심이 생길 때 갈등은 더욱 치열하게 일어나는 법, 꽤 오래전부터 빚어진 남녀간의 대립이 극심해지면서 사회가 당연시 여겨온 결혼과 출산에 대한 의식마저, 그를 둘러싼 엄혹한 현실과 함께 재고해 보게 된 상황이라 할까.

어찌보면 주어진 틀에 맞추어 희생한 아빠와 엄마의 삶이 아이들의 삶을 부풀리고 거대하게 만들면서 자연스레 진행된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너의 삶을 살고 너의 꿈을 쫓아 큰 사람이 되라는 부모의 희생이, 한 개인으로서의 존재 가치를 깨닫게 했고, 그와 동시에 자신을 위해 희생한 부모의 삶을 보며 결혼과 출산이란 개인의 삶이 지워지는 일이라는, 본래의 의미는 쏙 빠진 두려움을 갖게 했을 수 있다는 게다.

“딱풀이한테 제일 위험한 건 진짜 나일지도 몰라, 매일 도망갈 핑계 찾고 불평 불만이나 하고"
이러한 현상은 특히 여성에게 두드러지는데, 남성은 부모라는 굴레가 있다 해도 사회에 나가 일을 하며 개인의 역량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었으나, 여성에게는 ‘모성애’라는 것을 빌미로 집안을 돌보고 아이를 양육하는 일이 주된 역량이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가계를 위해 맞벌이라도 하게 되면 여성은 자신이 채 다하지 못한 책무, 완벽한 아내, 완벽한 엄마가 되어주지 못한다는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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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정체성과 존재의 목적이 더없이 중요하게 여겨지고 개인의 삶이 사라지지 않기를 원하는 오늘의 여성에게, 결혼과 출산은 본연의 가치를 확인하기도 전에 마냥 두렵고, 피하고 싶은 걸림돌처럼 느껴지는 게 너무도 당연하다. 이런 상황에서 “엄마도 원래 이기적이에요, 사람이니까”, 라는 말을 건네는 드라마의 등장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유의미할 수밖에 없다. 바로 얼마전 종영한 tvN ‘산후조리원’(연출 박수원 극본 김지수, 최윤희, 윤수민)의 이야기다.

‘산후조리원’은 제목 그대로 '세상에 없는 이상한 규칙이 존재하는 모성애 천국’이라는 산후조리원을 배경으로 상당히 현실감 있는 인물 설정과 에피소드로 많은 이들의 수두룩한 공감을 자아냈다. 얼떨결에 엄마가 되었지만 여전히 자신의 삶과 일이 더 중요한 주인공과 ‘엄마’라는 것 외에 ‘공통점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엄마가 된다는 것’의 본질적 의미를 탐구했다 할까.

“아이를 키워 보니까 제일 중요한 건 나예요, 내가 행복해야 우리 아이도 행복해질 수 있어요.”
그리하여 이들이 어떠한 답에 도달했냐면, 엄마가 된다는 것은 개인의 삶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새로운 삶이 시작되어 예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 뿐이며, 아이에게는 자신을 위해 포기하고 희생하는 완벽한 엄마보다 아이와 함께 행복한 엄마가 좋은 엄마라는 진실. 그동안 비틀린 사회구조가 만든 오해에서 비롯된 우리의 두려움을 저멀리 내쫓는 진실이다.

덕분에 우리는 결혼과 출산에 대해, 부모가 된다는 것에 대해 온전히 맞닥뜨려 볼 기회를 얻었고, 고달픈 임신과 잔인한 출산, 구차한 회복의 과정을 한 작은 인간을 얻기 위해서라면 감당할 만하지 않은가라는 생각까지 이르기도 했다. 물론 드라마이기에 허구적인, 아름다운 해석이라는 면 또한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시의적절하게, 게다가 잘 만들어져 우리 곁에 다가온 이 드라마가 더없이 고마운 이유는, 현실의 왜곡에 가려져 제대로 생각해볼 기회조차 놓칠 뻔한 가치들을 우리 앞에 되돌려 놓아 주었기 때문이다.


[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니스트 news@tvdaily.co.kr, 사진 = tvN '산후조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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