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동생의 얼굴, ‘플로렌스 퓨’ [윤지혜의 대중탐구영역]
2021. 07.29(목)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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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동생 역할을 이토록 실감나게 해줄 배우가 또 있을까. 동생도 그냥 동생이 아니다. 때때로 얄미울 정도로 짓궂고, 남들은 차마 집어내지 못할 정곡도 잘 찌른다. 하지만 서로 허물 없이 얼굴과 마음을 맞댈 수 있는 세계의 몇 안 되는 존재 중 하나로, 어떤 실망을 주어도 잃을 수 없다. ‘작은 아씨들’에 이어 ‘블랙 위도우’에서 배우 ‘플로렌스 퓨’가 담아내는, 너무 익숙한 애틋함에 실소가 터지는 우리네 여동생의 모습이다.

영화 ‘작은 아씨들(Little Women, 2019)’에선 첫째, 둘째 언니가 지닌 각각의 휘황찬란함과 셋째 언니의 선량함에 밀리고 밀려 제 자리 찾기에 바빴던 막내 ‘에이미 마치’였다. 에이미는 세계 여러 작품에 등장하는 각각의 동생들 중에서도 손꼽히는 밉상이어서, ‘작은 아씨들’을 좋아하는 이들에게조차 그리 큰 애정을 받지 못한 캐릭터다.

그도 그럴 것이 차분하고 자애로운 첫째와 똑똑하고 당찬 둘째,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선한 셋째, 이렇게 각각 좋은 요소들을 선점해 간 탓에 막내 에이미에게 남은 것이라곤 심술통밖에 없는 게 어떤 면에선 당연했다. 게다가 인기의 중심에 있었던 둘째 ‘조’와 매번 갈등 아닌 갈등 관계에 놓였으니 미운 털이 단단히 박히지 않고는 못 배겼으리라.

하지만 플로렌스 퓨가 에이미 역할을 맡게 되면서 그녀의 사정에 변화가 일어났다. 욕심 많고 심술궂고 약삭빠른 막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에이미의 이미지에, 플로렌스 퓨 특유의 장기로 생생하게 굴곡이 진 서사가 입혀진 것이다. 그러자 성향이 그러할 뿐 누구보다 주어진 상황에 진정성 있게 맞닥뜨리고 알고보면 누구보다 가족을 사랑하는, 에이미의 속내가 선명하게 드러나게 되면서 등장한 이래 가장 많은 사랑과 공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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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플로렌스 퓨 표의 장기는 영화 ‘블랙 위도우(Black Widow, 2021)’에서도 어김없이 발휘된다. 블랙 위도우 즉, 나타샤의 동생 ‘옐레나 벨로바’가 되어 세계적으로 유명한 히어로를 언니로 둔 동생의 모습을, 재기 발랄하게 구현해내는데 특히 블랙 위도우가 등장할 때마다 취하는, 시그니처 포즈를 언급하는 대목은 백미다. 누구나 염두에 두고 있었으나 영화적 설정으로 암묵적 동의를 했기에 감히 꺼내지 못한, 적과 대치한 상황에서 딱 공격 받기 좋은 것 아니냐는, 포즈의 효용성 문제를 위트 있게 짚어내기 때문이다.

심지어 따라해 보고서 낯간지러운 히어로 설정에 온 몸을 부르르 떠는 모습까지 연출한다. 그야말로 동생이라 가능한 장면이다. 실은 조금만 어긋나도 나타샤가 지닌 히어로로서의 존재감이 단순한 웃음 거리로 전락할 수 있었다. 그러나 플로렌스 퓨가 누구나 곁에 한 명 쯤 두었을 법한 동생의 모습을 실감나게, 현실감 있게 구축해 놓은 까닭에, 도리어 나타샤 본연의 인간적인 매력이 두드러지는 흥미로운 양상이 일어나더라.

다시 말해, 탁월하고 냉철한 히어로의 모습 이면에 존재하는, 동생을 사랑하고 아끼는 언니 나타샤의 이야기가 그녀를 히어로가 아닌 언니로서 대하는 동생 옐레나를 통해 제대로 드러나는 것이다. 이는 히어로 이전에 나타샤라는 인물의 삶 자체를 다루고자 했던 ‘블랙 위도우’의 목적과 방향에 부합하는 성취로, 덕분에 보는 우리는 작품에 깊고 온전하게 몰입할 수 있다. 주어진 배역을 자신만의 특색 있는 연기로 생생하게 만들어냄으로써, 이젠 세상의 모든 동생의 상징적 얼굴이 된 ‘플로렌스 퓨’의 눈부신 성과라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니스트 news@tvdaily.co.kr, 사진 = 영화 '작은 아씨들', '블랙 위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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