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의 희열3' "유명해지고 싶었다"…박준영 변호사의 솔직한 고백(종영) [종합]
2021. 07.30(금) 01:04
대화의 희열3
대화의 희열3
[티브이데일리 김종은 기자] '대화의 희열3'에서 박준영 변호사가 솔직한 입담으로 감탄을 자아냈다.

29일 밤 방송된 KBS2 예능프로그램 '대화의 희열3' 최종회에서는 박준영 변호사가 출연해 이야기를 나눴다.

이날 박준영 변호사는 자신의 유년 시절 이야기부터 꺼내놓기 시작했다. "장의사 집의 아들"이라는 박 변호사는 "아버님은 하는 것마다 말아 드셨다. 잡화상도 하시고 연탄 장사도 하셨다. 사실 장의사는 할아버지의 가업을 물려받은 거였다"라고 입을 열었다.

"누군가에게는 극심한 불행이었지만 사실 사람이 죽는다는 연락을 받는 게 반가웠다"라는 박 변호사는 "사람이 죽어야 장사가 되지 않냐. 지금 돌이켜보면 참 부끄럽다. 또 한편으로는 남의 불행으로 먹고산다는 점에서 장의사와 변호사가 비슷한 부분이 많더라. 그러면 과연 내가 남의 불행에 대한 배려는 하고 살았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라며 "그렇게 생각해 보면 아버지는 장의사로서 불행에 대한 배려가 각별했다. 저수지에 빠져 죽은 시신 같은 경우 며칠 만에 떠오르기 때문에 가족들도 가까이 가기 힘들다. 그런데 그런 시신들까지 닦아주시기도 했다. 상여라고 부르는 꽃도 촘촘히 꽂아주셨다. 강렬한 본보기가 되어주셨다는 생각이 있다. 하지만 가정폭력이나 음주 같은 좋지 않은 모습들도 있었다"라고 털어놨다.

이 때문에 박 변호사는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가출을 하기도 했다고. 그는 "어머니의 죽음에 아버지의 책임도 있다는 생각을 해 방황하기 시작했다"라면서 "공부를 핑계로 광주로 떠났지만 사실 유학은 도피처였다. 그래서 고등학교는 들어가자마자 자퇴했다. 그 뒤로는 가출해 서울과 인천 등에서 떠돌이 생활을 했다. 안 해본 일이 없다. 봉제 공장이나 프레스 공장, 나이트클럽에서도 일했었다. 하루하루 막 살았고 꿈도 없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고등학교 졸업장은 제발 따달라고 부탁해서 시골로 귀향했다. 1년 넘게 방황하다 돌아간 거였다"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박 변호사는 어떤 계기로 변호사를 꿈꾸게 됐을까. 그는 "전 군대에서 정신 차린 케이스다. 나태하고 불규칙적으로 살았었는데 군대에서 바뀌었다. 대대장님 운전병으로 복무했었는데, 그분 곁에서 운전하면서 '저렇게 살고 싶다'ㄴ느 생각을 할게 됐다. 그냥 멋졌다. 저렇게 살아보고 싶다고 마음먹게 됐다"라고 말했다.

이어 "군대 고참이 사법고시를 준비 중에 있었기 때문에 사법고시를 준비하기 시작했다"면서 "신림동 고시촌에 간다고 해서 따라갔다. 공부량에 대해선 전혀 몰랐다. 그냥 했다. 초반엔 공부가 당연히 안 됐다. 옥편을 어렵게 찾아서 해석해도 20-30 페이지 이상 볼 수 없었다. 요약법이나 정리 기술도 없었다. 5년 만에 합격했는데 기술도 요령도 없었던 게 비결이었던 것 같다. 열심히만 했다"라고 해 감탄을 자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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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가 된 박준영의 첫 시작은 수원이었다. 그는 많은 지역 중 수원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성적이 안 되면 선택의 여지가 없다"라고 솔직히 답하며 "성적이 거의 밑바닥이었다. 나름 똑똑하다는 이야기도 듣던 저였지만, 어느새 제침의 대상이 되어있었다. 서울 쪽에 원서도 많이 냈었지만 한 군데에서도 불러주지 않았다. 로펌뿐만 아니라 대기업 법무 팀에도 지원서를 냈는데 안됐다. 그렇게 힘들게 수원에 들어갔지만 전 실력이 검증되지도 않은 신임 변호사에 불과했다. 그래서 국선 변호를 하게 됐다. 전담보다 국선을 더 많이 했었다. '국선 재벌'로 불렸을 정도였다. 한 달에 70건도 했었다. 한 건에 20-30만 원 정도 받았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다 박 변호사는 수원 노숙 소녀 사망 사건을 시작으로 변화를 맞게 된다. 2007년 5월 신원을 알 수 없는 여자아이가 시신으로 발견된 사건이다. 그는 "이 사건이 제 인생 사건이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라며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검찰 조사 결과에 전혀 의문을 갖지 않았었다. 그땐 이 사건 저 사건 맡을 때라 사실 조금 귀찮기도 했다. 하지만 '사람과의 만남'으로 인해 의심을 품게 됐다"라고 전했다.

박 변호사는 "경기도 청소년 복지센터 선생님과 만났는데 아이들이 억울해 보인다고 하시더라. 그 이야기를 듣고도 처음엔 사실 시큰둥했었다. 그런데 선생님들이 나서서 정리해 온 자료들을 보다 보니 이 아이들의 사건에 뭔가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됐다. 허위자백의 가능성이 있겠다 싶었다. 이게 내 인생 사건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목표는 '유명해져야겠다' 뿐이었다. 정의감도 없었다. 정의감으로 달려들었으면 최선의 변호를 했을 거다. 근데 난 내 안위를 먼저 생각했다. 그래서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게 됐고, 이로 인해 충격을 받고 나서야 아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2심에서도 나 밖에 기댈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니 미안해지더라. 그때부터 과감하게 변호했다"라고 솔직히 털어놨다.

[티브이데일리 김종은 기자 news@tvdaily.co.kr / 사진=KBS2 '대화의 희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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