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꽃 필 무렵' 이정은의 '말하는 대로' [인터뷰]
2019. 12.08(일) 10:00
동백꽃 필 무렵 이정은
동백꽃 필 무렵 이정은
[티브이데일리 최하나 기자] 생생하게 꿈을 꾸면 이뤄진다는 '시크릿 효과'처럼, 배우 이정은의 인생은 '말하는 대로' 이뤄졌다. 영화 '기생충'으로 칸 입성은 물론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노미네이트까지, 상 또한 넘치게 받았다. 꿈이 현실이 되는 그 일련의 과정 동안 이정은은 들뜨거나 자만하지 않고 중심을 잡으려 부단히 노력 중이다.

올해는 단연 이정은의 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출연하는 작품마다 소위 '대박'이 터지고, 시상식마다 상을 휩쓸고 있으니 말이다. KBS2 수목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극본 임상춘·연출 차영훈)도 마찬가지다. '동백꽃 필 무렵'은 편견에 갇힌 맹수 동백(공효진)을 깨우는, 촌므파탈 황용식(강하늘)의 폭격형 로맨스를 그린 작품으로, 이정은은 동백을 버린 엄마 정숙 역을 맡아 연기했다.

이정은이 '동백꽃 필 무렵'에 등장했을 때만 해도, 시청자들에게 깊은 감동과 울림을 선사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동백을 보육원에 버리고 20년 넘게 생사도 모르고 지내던 정숙이 치매에 걸린 채 다시 나타났을 때, 시청자들과 동백 모두 그를 말년이 되어서야 친딸 덕을 보겠다고 나타난 비정한 엄마쯤으로만 생각했다.

그러나 정숙은 '동백꽃 필 무렵'을 관통하는 키워드 중 하나인 '모정'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었다. 척박한 삶에 몰리고 몰려 어쩔 수 없이 동백을 버렸지만, 내내 죄책감에 시달리며 딸을 사랑해 왔던 눈물 나는 서사를 지닌 인물이었다. 연쇄 살인마 '까불이'의 정체만큼이나 정숙의 서사도 반전 아닌 반전을 선사하며 시청자들을 참 많이도 울렸다.

이정은도 정숙이 이러한 과거사를 지닌 인물인지 모르고 '동백꽃 필 무렵'을 시작했단다. 다만 연기를 하면 할수록 왜 임상춘 작가가 자신에게 정숙의 서사를 알려주지 않았는지 어렴풋이 이해했다고. 이정은은 "배우가 많은 것을 알고 연기하는 것이 때로는 방해될 때가 있더라"면서 대본이 나오는 속도만큼 정숙의 감정선을 풀어내며 연기했다고 했다.

다만 19회에서야 풀린 정숙의 서사에 많이 놀랐다고. 이정은은 "대본이 나오고 모두들 놀랐다. 그 정도의 이야기가 나올 거라고 생각 못했다"면서 정숙의 서사가 또 다른 부담감으로 다가왔다고 했다. 정숙의 인생 굴곡을 시청자들이 납득할 수 있게 연기할 수 있을지 고민됐다고. 이정은은 "너무 드라마 같이만 풀면 살짝은 연기를 못한다는 이야기를 들을까 봐 최대한 담백하게 하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서사가 주는 울림을 더욱 잘 전달하기 위해 정숙의 내레이션을 편집이 다 끝난 영상을 보며 녹음을 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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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한 엄마에서 동백이 '까불이'에게 위협을 당하자 직접 그를 찾아내 "엄마는 자식 헤칠 놈은 금방 알아본다"고 위협하며 생의 마지막에서도 자신이 아닌 딸을 위하는 절절한 모성애를 가진 인물로 그려진 정숙이다. 이정은은 정숙을 연기하며 실제 모친이 많은 도움이 됐다고 했다. 이정은의 모친 역시 '동백꽃 필 무렵' 속 정숙을 보며 "너 내 모습을 모티브 삼았니"라고 할 정도였다고. 이정은은 모친을 "다정다감하고 위급한 상황에서 되게 용기가 있는 분"이라고 설명하며 "저희 어머니가 치매 연기를 잘한다. 복지관을 다니시면서 치매 환자분들을 많이 만나다 보니 그런 것 같다. 그래서 치매 연기를 해야 하는 역할이 왔을 때 어머니의 피를 물려받았으니 나도 잘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고 말했다.

동백을 연기한 공효진 역시 이정은이 정숙을 연기하는데 몰입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였다. 이정은은 "효진이가 대사 하면 대사 하는 느낌이 아니었다. 실제로 말하는 듯했다. 그래서 저도 솔직하게 연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이상은 하지 말고 연기에 기름기를 좀 빼자고 생각했다"고 했다. 또한 이정은은 효진이에게 도움을 정말 많이 얻었다. 그 친구에 의해서 제 연기도 결정된 것 같다"고 했다.

이정은이 '동백꽃 필 무렵'을 통해 얻은 자산은 미혼모에 대한 편견을 어느 정도 지워냈다는 것에 있었다. 이정은은 "신문을 통해 접했던 아이를 버리고 떠나는 인물에 대해 조명하고, 조금은 다른 시각을 갖게 해 준 작가님에게 감사하다"라고 했다.

이정은 본인도 미혼모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 됐다고. 이정은은 "저도 옛날에는 그런 분들의 이야기를 접했을 때 '그래도 그랬으면 안 됐지'라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이번 작품을 통해 사람마다 다 사연이 있다는 걸 알게 됐고, 어떤 이유로라도 손가락질받는 사람들에 대한 마음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됐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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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부터 '동백꽃 필 무렵'까지, 올 한 해 배우로서 최고의 한 해를 보냈지만 여기에 생각이 함몰되지 않게 노력 중인 이정은이다. 이정은은 "가장 행복할 때 가장 불행한 생각을 한다"면서 "그래야 제가 행복하게 오래 살 것 같다"고 했다. 과거의 영광에만 매달려 현재의 삶을 놓치지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었다. 이 생각은 이정은을 조금 더 단단하고 여유롭게 만들었다. 내년의 삶이 올해의 영광보다 미진할 지라도 괜찮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묵묵하게 자신의 길을 걸으면 영광은 또 오기 마련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지금의 '믿고 보는 배우'가 되기까지 차근차근 자신만의 길을 걸어온 이정은이 뚝심 있게, 또 '말하는 대로' 걸어갈 길이 무엇일지 기대되는 이유다.

"연기는 할 때마다 어려운 것 같아요. 공부는 하면 결과가 금방 나오지만 연기는 결과가 금세 나오지 않으니까 애가 닳는 것 같아요. 근데 또 안 풀리면 그렇게 재밌더라고요. 제가 열심히 연구해서 내놓은 걸 사람들이 좋아하면 좋더라고요. 어렵지만 연기를 계속하는 이유인 것 같아요."

[티브이데일리 최하나 기자 news@tvdaily.co.kr/사진=송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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