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이병헌 "연기 잘한다는 말, 질리지 않아요" [인터뷰]
2019. 12.22(일) 11:00
백두산 이병헌
백두산 이병헌
[티브이데일리 최하나 기자] 이제는 연기를 잘한다고 말하기 입 아플 정도다. 누군가는 배우 이병헌의 연기를 두고 '악마의 재능'이라고 할 정도니 말 다했다. 그러나 이병헌은 그 말이 질리지 않을 정도로 좋다고 했다. 내년이면 데뷔 30주년인 이병헌에겐 그 한마디가 때론 징글징글한 연기를 계속하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이병헌이 데뷔 후 처음으로 재난 영화를 선택했다. 영화 '백두산'(감독 이해준 김병서·제작 덱스터스튜디오)는 백두산'은 남과 북 모두를 집어삼킬 초유의 재난인 백두산의 마지막 폭발을 막아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이병헌은 극 중 백두산의 마지막 폭발을 막기 위한 결정적 정보를 손에 쥔 북한 무력부 소속 일급 자원 리준평을 연기했다.

스스로도 "선뜻 손이 안 가는 장르"라고 말한 재난 영화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병헌은 "우리가 늘 봐왔던 곳에 커다란 재난이 생긴다는 점이 비주얼상으로 어떻게 나올지 궁금했다"고 했다. 또한 백두산 폭발을 막기 위한 리준평과 조인창(하정우) 대위의 여정을 그린 '버디무비' 요소도 이병헌을 '백두산'으로 이끈 요소 중 하나였다. 이병헌은 "두 사람의 '케미'가 잘 맞는다면 영화 잘 만들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재난이 상황에서 두 사람이 죽을 고비를 몇 번 넘어가면서 정을 쌓는 영화가 거의 없지 않았나. 그런 지점도 좀 특별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고 말했다.

베이징 주재 북한 서기관으로 위장 활동을 하다 남측의 이중 첩자임이 발각돼 수감돼 있던 리준평이 조인창 팀과 조우하는 장면은 강렬한 인상을 자아낼 정도로 그 비주얼이나 존재감이 어마하다. 기름에 떡진 장발에 허름한 차림이지만 리준평의 두 눈만큼은 활활 빛난다. 그러다가 갑자기 전라도 사투리와 러시아어를 구사하는 리준평은 좀처럼 가늠할 수 없는 캐릭터로 보인다. 이병헌은 리준평의 첫 등장 장면을 토대로 캐릭터를 잡았다고. 그는 "리준평이라는 인물은 첫 신 등장에서 저 인물이 어떤 캐릭터인가가 반 이상은 보이지 않을까 싶었다. 임팩트 있게 나타나지만 전라도 사투리와 러시아어를 하는데 약간 알 수 없는 행동을 하지 않나"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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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등장 이후 리준평은 조인창 팀의 비밀 작전에 협조하는 듯하면서도 예기치 못한 행동으로 EOD 대원들을 당황시키는 한편, 엘리트 요원다운 숙련된 민첩성과 과감한 행동력으로 자신만의 목적을 향해 움직인다. 이에 이병헌은 "이중첩자 혐의로 수용소에 있는 사실만으로도 이 인물은 어떤 사상을 갖고 있거나 정치적인 인물이 아니다. 자신의 이익을 가지고 살아가는 인물이라고 느껴졌다. 그렇게 인물을 설정하고 나니까 인물이 잡혀가더라"고 설명했다.

이병헌은 허술한 농담을 건네다가도 금세 상대방의 빈틈을 파고들어 무장해제시키는 리준평의 이중성을 탁월한 완급조절을 통해 연기했다. 이는 이병헌이 지닌 위트와 존재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가령 리준평이 풀밭에서 용변을 보는 장면은 그의 이중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용변을 본다는 설정 때문에 영화 '광해'와 '내부자들' 속 한 장면을 떠올릴 수 있겠으나, 이 장면은 리준평의 캐릭터를 보여주면서 향후 이야기 전개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한 장면이다. 이병헌도 "만약에 그 신이 '광해'와 '내부자들' 때문에 억지로 넣은 것 같은 신이 된다면 당연히 기시감을 느끼겠지만, 이 장면은 어떤 장치처럼 쓰인 장면이기 때문에 걱정은 없었었다. 나름 설득력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또한 이병헌은 북한 사투리, 목포 사투리, 러시아어, 중국어 등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리준평을 연기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펼쳤다. 현장에 선생을 두고 계속해서 발음을 고쳐나가면서 완벽에 가까운 언어 구사력을 보였다. 이에 이병헌은 "당연히 배워야 한다. 요즘은 작은 디테일도 중요하게 보지 않나"라면서 "사전에 중국어와 러시아어는 파일로 받아서 계속 듣기는 했다. 현장에서도 지도가 필요했다. 선생님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북한 사투리에 대한 부담이 제일 컸는데, 막상 해보니까 중국어가 제일 힘들었다. 중국어를 전혀 못하니까 정말 힘들더라"고 덧붙였다.

'백두산'은 백두산 폭발이라는 재난을 구현하기 위해 대규모 CG 작업을 거쳤다. 특히 영화 초반 강남역 붕괴 장면은 마치 관객을 재난 현장 한가운데 있는 듯한 리얼하고 압도적인 CG가 압권이다. 이에 영화를 본 이병헌은 CG에 대한 만족감을 드러냈다. 이병헌은 "생각했던 것보다 규모감이 엄청나다는 게 느껴지더라. 아쉬운 부분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이 영화에서 사람들이 기대하는 규모감은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한 '백두산'은 이병헌과 하정우의 첫 연기 호흡이라는 점에서도 화제가 됐다. 국내 내로라하는 연기파 배우들의 연기 호흡은 엄청난 시너지를 내며 스크린을 가득 채운다. 이병헌은 처음 연기 호흡을 맞춘 하정우에 대해 "굉장히 재치 있고 센스 있는 친구다. 배우에게 있어 센스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이 친구는 센스가 정말 뛰어나다. 그것이 연기에 묻어져 나오고 연기에 백분 활용하는 배우인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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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가 성수기인 연말 대전에 뛰어든 '백두산'은 개봉 첫날에만 45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압도적인 박스오피스 강자로 군림하고 있다. '천만 영화' 대열에 합류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는 가운데 이병헌은 "천만 됐으면 좋겠다. 너무 당연한 거지만 이 영화는 대놓고 상업영화이지 않나. 관객이 많이 드는 게 중요한 영화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백두산'으로 또 한 번 자신의 연기력을 입증한 이병헌. 내년이면 어느덧 그도 30년 차 배우가 된다. 이병헌은 "30년 됐지만 1년 한 것 같은 느낌이다"라면서 소회를 밝혔다. 약 30년 동안 무수한 캐릭터를 연기해왔지만 아직 안 해본 캐릭터가 너무 많다며 눈을 빛냈다.

3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이병헌을 배우로 살게끔 한 원동력은 의외로 간단한 거였다. 바로 "연기 잘한다"는 말 한마디였다. 이병헌은 "그 말은 언제 들어도 질리지 않는다"면서 "동료들이나 업계 사람들에게 그 말을 들으면 느낌이 다르다"고 했다. 어느 작품으로 만나도 '연기 잘한다'는 다른 이들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을 거란 신뢰를 주는 이병헌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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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브이데일리 최하나 기자 news@tvdaily.co.kr/사진=영화 '백두산' 스틸, BH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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