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수 '빅토르 안' 이름에 영향준 '빅토르 최'는 누구?
2014. 02.16(일) 21:55
안현수 빅토르 최
안현수 빅토르 최
[티브이데일리 조해진 기자] 러시아로 귀화한 안현수의 러시아 이름 '빅토르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안현수는 '2014 소치동계올림픽' 쇼트트랙 1000m와 1500m에서 러시아의 국기를 달고 시상대에 올라 금메달과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는 러시아 대통령 푸틴의 찬사를 받으며 러시아의 영웅으로 등극했다. 푸틴은 축전에서 "빅토르 최의 혼을 안고 달린 빅토르 안이 승리를 거뒀다"면서 "최고의 기량을 보여줬다. 상대에 비해 더 빨랐고 강했고 기술적으로도 뛰어났다"고 안현수를 극찬했다.

안현수가 뛰어난 기량으로 두 개의 메달을 목에 걸면서 안현수가 귀화 당시 이름을 '빅토르'라고 지은 사연에 대한 관심도 고조되고 있다.

안현수는 '빅토르'라는 이름을 지은 것에 대해 "승리를 뜻하는 영어로 '빅토리'와 발음이 유사하고, 러시아에서 전설이 된 가수 빅토르 최를 기리기 위해서다"라고 두 가지 이유를 밝혔다.

안현수가 언급한 빅토르 최(1962~1990)는 구 소련(이하 러시아) 시절 큰 인기를 모았던 한국계 록 가수다.

그는 한국인 2세와 우크라이나 출신 러시안 사이에서 태어나 자유를 갈망한 러시아 젊은이들의 문화대통령으로 자리했다.

미술에 천부적인 재능을 보였고 글재주도 뛰어났던 그는 1982년 '키노'라는 록그룹을 결성해 재능을 음악에 쏟아 부었다. 전설이 된 곡 '혈액형' 등을 비롯해 발표한 앨범마다 100만 장 이상 팔려나갔다.

특히 당시 시대상 함부로 입에 담았다가는 목숨이 위험한 공산주의 체제의 모순까지 가사에 담는 등 현대 러시아 록밴드의 시초를 이뤘다. 러시아 젊은이들은 빅토르 최를 추종하기 시작했고 그 덕분에 러시아에서 구박받던 고려인들에 대한 인식도 달라졌다.

빅토르 최가 가장 전성기를 누렸던 때는 1990년이다. 이해 6월 모스크바국립경기장에서 벌어진 키노의 공연에는 7만6000여명의 팬이 몰렸다. 이는 아직까지 러시아 최대의 행사 기록으로 남아있다.

그러나 빅토르 최는 1990년 8월 15일 의문의 교통사고로 숨졌다. 그의 사망 소식에 앳된 10대 여학생 5명은 일주일 간격으로 "빅토르 최와 하늘에서 교감을 나누겠다"며 투신 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빅토르 최의 영향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모스크바 예술광장 아르바트에는 10여 년에 걸쳐 완성한 빅토르 최 '추모의 벽'과 '빅토르 최 석조비'가 세워져있다.

[티브이데일리 조해진 기자 news@tvdaily.co.kr / 사진=빅토르최 앨범 재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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