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뷰] '덩케르크', 크리스토퍼 놀란만 할 수 있는 이야기
2017. 07.21(금) 00:33
덩케르크
덩케르크
[티브이데일리 황서연 기자] 크리스토퍼 놀란이 그간 선보인 장기를 한데 모아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생애 첫 실화 영화 '덩케르크'를 통해 전쟁영화 속 클리셰를 모두 덜어내고, 자신만의 문법을 적용해 색다른 이야기를 완성했다.

'덩케르크'는 1940년 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 덩케르크 해안에 고립된 40만여 명의 영국군과 연합군을 구하기 위한 사상 최대의 탈출 작전을 그린 실화를 다룬 영화다.

놀란 감독은 '덩케르크'를 통해 처음으로 현실에 발을 디뎠다. '인터스텔라'에서는 광활한 우주를, '다크 나이트'에서는 어두운 고담시를 배경으로 영웅 판타지를 그렸던 그가 과거로 돌아가 '사실'에 카메라 렌즈를 들이민 것. 그럼에도 영화는 그가 전작에서 보여줬던 장점들을 한데 뭉쳐 놓은 듯한 모습이다.

'덩케르크'의 진가는 이야기가 진행될 수록 차곡차곡 쌓이는 감정선에서 발휘된다. 놀란 감독은 전작인 '인터스텔라' '인셉션'을 연상케 하는 장기, 일명 '시간축 비틀기'라는 무기를 꺼냈다. 단순히 비트는 대신 육지, 바다, 하늘에서의 시간을 씨실, 낱실로 삼아 정교한 직물을 제조했다. 덩케르크 해안가에서 탈출만을 바라는 영국 보병들의 일주일, 이들을 구하기 위해 도버 해협 반대편에서 배를 몰고 나선 민간의 어부들, 그리고 하늘에서 이들을 구하기 위해 공중전에 임하는 파일럿의 한 시간이 서로 교차하며 시너지 효과를 내는 것.

이는 관객의 몰입도를 배가하는 직접적인 장치다. 초반에는 육지, 해상, 공중에 각각 동떨어져 있는 인물들의 서사가 조각처럼 흩어져 있지만 동떨어지지 않은 채 서로 스며들고, 인물들이 일련의 사건 끝에 동일한 시간선 위에서 만나는 순간은 관객에게 큰 희열을 선사한다. 기존 전쟁영화의 클리셰를 기대한 관객이라면 비교적 잔잔하게 흘러가는 이야기에 실망할 수도 있으나, 놀란 감독은 영화로 다루기에는 자칫 밋밋할 수도 있었던 군인들의 탈출기에 시간축을 뒤섞음으로 인해 서스펜스를 가미해 관객의 몰입도를 높였다. 포탄이 날아다니고 유혈이 낭자하지는 않지만, 전쟁이 자아내는 긴장과 공포를 느끼기에는 충분하다.

여기에 평소 실사 촬영을 추구하는 놀란 감독의 작업 방식이 더해져 사실감을 더한다. "관객을 전투기 스핏파이어 조종석에, 군인들이 서있던 덩케르크 해안가에, 그 곳으로 향하는 배 위에 앉혀두고 싶었다"는 감독의 바람이 65mm 카메라, IMAX 전용 카메라를 활용한 실사 촬영을 통해 이뤄진 것. 리얼리즘을 극대화한 화면은 침몰하는 배에서 사투를 벌이는 군인들, 적의 전투기를 격추시키기 위해 곡예비행을 하는 조종사의 시선을 구현해 관객들을 스크린 안으로 끌어들인다.

또한 영화 음악계의 거장, 한스 짐머가 작업한 OST가 정점을 찍는다. 시계의 초침 소리를 연상케 하는 서늘한 사운드는 전쟁터 속 위태로운 상황과 인물들의 날 선 감정선을 증폭시켜 놀란이 자아낸 서스펜스 위에 긴장과 여운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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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력 넘치는 배우들은 관객과의 원활한 대화를 돕는 매개체다. 마스크에 가려진 얼굴이지만 눈동자 만으로도 존재감을 드러내는 파일럿 톰 하디를 위시해 생존을 위해 분투하는 어린 병사 톰 역의 핀 화이트페드, 알렉스 역의 해리 스타일슨(원디렉션) 등이 사실적인 이야기 위에 입체감 있는 캐릭터를 더한다. 또한 정의감 넘치는 선원 부자를 연기한 마크 라이런스, 톰 글린 카니와 신스틸러로 손색이 없는 조지 역의 베리 케오간 등 탄탄한 연기력을 자랑하는 배우들이 제 몫을 다한다.

관객들이 이처럼 영리한 스토리와 사실적인 캐릭터로 인해 영화 속에 온전히 빠져들면, 극이 지닌 메시지가 드러나는 건 그 이후의 일이다. '덩케르크'는 누군가에게 전쟁의 책임을 묻지 않는다. 그저 이미 벌어진 전쟁을 통해 참혹한 전장을 조명하고, 전쟁이 얼마나 덧없고 쓸모없는 일인지 보는 이들이 자연스럽게 깨달을 수 있도록 길을 제시할 뿐이다. 이런 교훈을 굳이 캐릭터의 입을 통해 설파하지도 않는다. 그저 영상을 통해 관객들에게 말을 건넬 뿐이다.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과 함께 남은 묵직한 여운 역시 그가 전하려던 말 중 일부다. 20일 개봉.

[티브이데일리 황서연 기자 news@tvdaily.co.kr / 사진=영화 '덩케르크' 스틸,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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