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뷰] '군함도' 지옥보다 끔찍한 섬, 우리는 살아 있었다
2017. 07.26(수) 09:54
영화 군함도 리뷰
영화 군함도 리뷰
[티브이데일리 한예지 기자] 절망의 암흑이 드리워진, 탈출할 수도 없던 끔찍한 지옥섬. 비인간적 처사와 잔악성으로 점철된 그곳에서 인간의 궁극적인 생존 의지로 들끓는 이들의 열망과 애환이 필사의 탈주극을 완성했다. 영화 '군함도'다.

7월 27일 개봉된 영화 '군함도'(감독 류승완·제작 외유내강)는 군함 모양을 닮아 군함도로 불리는 하시마섬, 그 섬에서 목숨을 걸고 탈출을 시도하는 조선인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하시마섬은 활발한 탄광사업으로 일본 근대화의 중추적 역할을 한 곳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상은 1940년 일제 강점기 당시 수많은 한국인들이 강제 징용돼 강제 노역을 해야 했고, 한 번 들어가면 빠져나올 수 없는 감옥이란 뜻에서 당시 우리에겐 지옥도라 불렸던 섬이다.

'군함도'는 끔찍한 역사를 모티브로 한 영화인만큼, 극의 주무대가 되는 하시마섬을 완벽하게 구현해내는데 사력을 다한 듯하다. 사방이 암벽으로 둘러싸인 감옥섬 외양부터 조선인들이 군함도에 도착해 처음 향하게 되는 선착장과 학교 운동장, 번화한 유곽과 강제 징용이 이뤄지는 탄광 내외부, 확연하게 차이를 띄는 일본인과 조선인의 거주지역까지 섬세하고 세밀하게 담아낸다. 또한 이 공간 하나하나에 초점을 맞춰 전개되는 스토리로 당시 섬에 있던 사람들에 처해진 비인간적이고 잔혹한 처사들을 생생하게 체감케 한다.

공간을 활용한 영리한 연출도 돋보인다. 이를테면 흑백 오프닝 신부터 갈비뼈가 앙상하게 드러날 만큼 굶주린 어린 이들이 뜨겁고 어두운 지하 탄광을 개미처럼 기어가는 신은 밀폐된 공간이 주는 숨막히는 고립감을 전한다. 여기에 구정물이 가득한 목욕탕에 검은 잿가루와 땟국물이 흐르는 조선인 수백 명이 밀집돼 있는 신, 축축하고 썩은 물이 나오는 숙소 신 등만으로도 잔학적인 상황이 극대화된다.

오프닝 시퀀스 중 검고 음산한 바닷속에 몸을 던져 탈주한 조선인들을 그물로 거둬들이며 "세 놈이나 죽었으니 배급을 받겠다"고 낄낄거리는 일본인들은 과도한 상황 설정 없이도 참담한 비분강개를 일으킨다. 그만큼 역사적 사실감이 주는 무게감과 압박감이 상당한 탓도 있을 터. 영화는 바로 해당 신에서 더할나위 없을만큼 경쾌하고 발랄한 백그라운드 뮤직을 삽입해 이질적이고 기묘한 감상을 더한다.

극의 전개를 이끄는 건 악단장 강옥(황정민)이다. 강옥은 추천장에 속아 딸 소희(김수안)를 데리고 악단원들과 함께 일본에 갔다가 군함도에 끌려가는 인물. 하지만 좌절하는 것도 잠시다. 그는 군함도에서도 탁월한 순발력과 눈치로 노무계 사람에 고급 시계를 내어주고, 단원들과 합주를 하며 일본 관리 눈에 들어보려 약삭빠르게 생존 본능을 펼친다. "딴따라 새끼들이 제일 먼저 발 뻗게 생겼다"는 극 중 대사처럼 코믹하고 명랑한 강옥의 생존 본능이다.

이어 인간의 삶이 생존을 위한 선택적 적응의 연속이란 말이 있듯, 각 주요 인물들의 인물 설정보다 이들 각각의 생존법이 부각되는 점이 흥미롭다. 종로 주먹 최칠성(소지섭)은 일본인들의 강압적인 태도와 지시에 굴욕을 느끼지만, 야만적인 조선인 관리자 종구(김민재)를 제압하고 그 자리를 넘겨받아 제왕적 권력을 유지한다. 이때 펼쳐지는 맨몸 목욕탕 격투 신에서의 야성미가 포인트. 일본인 위안부로 갖은 고초를 겪고 또다시 군함도에 끌려온 오말년(이정현)은 조선인 소녀들에게 든든한 방패가 되어주는 버팀목 같은 존재이며, "한 명이라도 살아남는다면 우리가 이기는 것"이라는 강인한 생존법을 보인다. 독립운동 주요 인사를 구출하란 임무를 받고 군함도에 잠입한 광복군 소속 OSS 요원 박무영(송중기)은 극 중 유일한 독립군답게 민족의 생존을 중요시하는 인물이다.

티브이데일리 포토


이들은 군함도에 온 1945년 2월부터 탈출을 감행하는 8월까지, 반년의 지난한 시간을 저마다의 생존전략으로 버티고 있는 셈. 이는 영화가 담아낸 역사적 의미와 무게감 그 이면에 가장 기본적인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모든 생명은 줄기찬 생존 의지를 갖고 있으며, 그 건재한 의지로 서로 연대하며 짓밟히는 인간의 존엄성을 지킨다는 것. 일제강점기 군함도가 배경이 된 영화지만 극에서 죄악을 저지르는 인물들이 비단 일본인으로만 국한돼 있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탈출하는 조선인들을 잡아 일본군에 바친 조선인 포주, 일본 여학생을 강간 살해하는 조선인, 패전이 짙은 전시상황에서 궁핍한 식량을 지키려 조선인 학살을 감행하는 일본인 등은 궁극적으로 인간의 생존을 저해하고 압박하는 야만자들의 가학 행위로써 묘사된다.

그렇기에 이 모든 부조리에 맞서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뜨겁게 저항하는 인간들의 대규모 탈출 신은 극의 절정에 달하며 웅장한 비장미가 배가된다. 미군 폭격기의 미사일과 일본군의 총탄이 빗발치듯 쏟아지는 상황에서 탈출하려는 수백 명의 조선인들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을 방불케 한다. 하지만 위기의 순간 연대하며 힘을 합치고, 꿈쩍도 않는 철물을 기어코 일으켜 세우는 이들의 처절하고 아름다운 생존을 향한 투쟁은 뭉클하다는 단어로만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의 기폭제로 작용한다.

다만 기존의 현대적 장르물에서 보였던 통쾌하고 속도감 있는 류승완 감독 특유의 전개 방식이 드러나지 않는 건 다소 아쉽다. 극 중반부터 예측 가능한 탈주 수순에 따라 흘러가는 전개 방식을 취해 탈주 영화 특유의 긴장감도 부족할뿐더러, 역사적 비극과 무게감에 눌린 듯한 엄숙하고 진중한 톤앤매너가 유지되는 까닭이다. 또한 부성애와 로맨스란 클리셰로 귀결되는 인물관계도 역시 각 인물들을 평면적으로 만드는 요소다.

그럼에도 '군함도'가 의미 깊은 영화임은 틀림없다. 이제껏 단 한번도 시도한 적 없는 '군함도'란 소재를 스크린에 재현한 것만으로도 묵직한 전율을 일으킨다. 강제징용 과거를 지운 채 하시마 섬을 일본 근대화 유적의 상징인 유적지로 미화하고 있는 일본에게도, 과거를 바로잡지 못한 비극의 역사를 가진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또한 촬영이 진행되는 6개월여간 처절하고 끔찍했던 군함도의 조선인으로 살았던 배우들의 혼신이 담긴 투혼은 그 행위 자체만으로도 지극히 경이롭다.

티브이데일리 포토


[티브이데일리 한예지 기자 news@tvdaily.co.kr/사진=영화 '군함도' 포스터]
기사제보 news@tvdaily.co.kr        한예지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키워드 : 연예계이슈
싸이월드공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