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뷰] '장산범', 조금 더 '볼륨'을 높였다면
2017. 08.17(목) 15:45
영화 장산범 포스터
영화 장산범 포스터
[티브이데일리 연휘선 기자] 낯선 사람에게서 내 사람의 목소리가 감쪽같이 들릴 때, 사람은 낯선 얼굴과 목소리 중 어떤 것을 더 무서워할까. 영화 '장산범'은 이질적인 소리에 시각적인 공포감으로 방점을 찍으며 그 답을 전한다.

17일 개봉된 '장산범'(감독 허정·제작 스튜디오 드림캡처)은 누군가에게 익숙한 사람의 목소리를 흉내 내 사람을 홀리는 귀신 장산범의 괴담을 다룬 영화다. 스릴러 영화 '숨바꼭질'로 560만 관객을 열광시킨 허정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영화이자 그가 본격적으로 선보이는 첫 공포물이다. 특히 영화는 목소리를 이용한 공포에 초점을 맞춰 '소리 스릴러'라는 독특한 소재를 강조하고 있다.

영화는 희연(염정아)이 남편 민호(박혁권), 둘째 딸 준희(방유설) 그리고 시어머니(허진)와 함께 도시를 떠나 장산으로 이사 오는 것으로 시작한다. 장산은 영화에서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의 고향인 동시에, 희연과 민호의 실종된 첫아들을 찾을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이다. 희연은 시어머니가 장산에서 안정을 취하고 자신의 아들을 잃어버린 순간을 조금이라도 기억해내길 바란다.

그러나 희연과 민호가 이사 온 첫날 우연히 집 근처 숲에서 여자애(신린아)를 만나며 장산은 희망과 먼 불안한 곳으로 변모한다. 희연은 잃어버린 아들과 비슷한 체구인 여자애에게 집착하고 모성애를 쏟아붓는다. 그러나 민호는 자연스레 희연을 "엄마"라 부르며 따르는 여자애가 신기하다 못해 의심스럽다. 민호는 오래전 실종된 아들도 죽었다 생각할 정도로 매사 이성적이기에 신원불명의 여자애를 쉽게 믿지 못한다.

희연과 민호가 갈등하고 긴장 국면에 접어들면서 여자애는 희연을 "엄마"라 부르고 딸 행세를 하며 급기야 준희의 목소리를 따라 한다. 여기서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공포가 피어난다. 희연이 친자식처럼 살뜰히 보살피고 있으나, 여자애는 어디까지나 이방인이다. 심지어 어디서 왔는지, 왜 희연과 민호가 이사 온 장산의 숲을 헤맸는지도 알 수 없다. 그런 낯선 여자애가 희연과 민호에게는 누구보다 친숙하고 정겨운 딸 준희의 목소리를 감쪽같이 흉내 내는 상황은 자못 괴기하다.

영화는 이처럼 낯선 얼굴과 익숙한 소리가 만나며 발생하는 이질감을 서스펜스에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여자애가 목소리를 따라 하는 대상이 준희로 시작해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나 민호 등 희연의 가족으로 확산되고, 또 여자애가 아닌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도 복사된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 이 과정에서 민호부터 시작된 여자애를 향한 의심이 희연에게도 번지고 영화의 긴장감도 극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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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운데 염정아나 박혁권, 신린아는 기대 이상의 연기로 공포를 극대화시킨다. 염정아는 '장화, 홍련' 이후 14년 만에 공포물에 도전하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영화에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과거 공포감을 자아냈던 캐릭터와 달리 이번에는 공포감을 체험하는 리액션 연기를 보여주며 연기 변신마저 시도한다. 그 안에서 '엄마' 희연으로서 절절한 모성애가 눈물샘을 자극하기도 한다. 박혁권 역시 염정아와 정반대 성향의 캐릭터를 연기하며 극의 중심을 잡고, 신린아는 아역 배우라고 믿을 수 없는 깊이 있는 시선 처리와 감정 연기로 탄성을 자아낸다.

안정적인 연기에 몰입해서 누적되는 사운드를 느끼다 보면 가만히 있어도 동굴처럼 에워싸는 말의 울림, 작은 숨소리도 놓치지 않는 청각적 효과가 생생하게 구현돼 공포를 배가 시킨다. 다른 영화들에 비해 후시 녹음에만 시간과 규모를 5배나 투자한 게 드러나는 대목이다.

다만, 이 영화의 결정적인 공포감이 소리가 아닌 눈으로 드러난다는 점이 '소리 스릴러'라는 정체성을 무색하게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낯선 여자애가 희연의 딸 준희의 목소리를 흉내 내는 설정이란 단순히 소리로만 표현되는 게 아니다. 준희의 목소리가 들릴 때 여자애의 얼굴이 클로즈업되거나, 민호가 준희를 앞에 두고 있는데 뒤에서 또 다른 준희의 목소리가 기척으로 '보일 때'만 비로소 공포가 완성된다. 다른 얼굴에 복제된 똑같은 목소리의 괴기함이란 결국 청각만으로는 완성될 수 없는 셈이다.

때문에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했던 소리는 후반부에 이르러 시각적 공포를 위한 보조 장치로 전락한다. 문제는 공포감을 주던 시각 효과도 그동안 한국 공포 영화에 숱하게 등장했던 것들이라 잠깐의 놀람만 선사하는 게 전부라는 것. '소리 스릴러'라는 신선한 수식어가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북돋았지만, 정작 영화는 공포의 전형을 따라 하다 정체성을 잃어버린다. 그리고 갈팡질팡하는 영화는 장르적 무기인 공포마저 휘발시킨다.

[티브이데일리 연휘선 기자 news@tvdaily.co.kr / 사진=영화 '장산범' 포스터 및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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