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에드거 앨런 포', 비운의 천재를 영원히 기억하는 법 [리뷰]
2017. 11.24(금) 19:37
뮤지컬 에드거 앨런 포 포스터
뮤지컬 에드거 앨런 포 포스터
[티브이데일리 연휘선 기자] 프랑스 시인 보들레르가 작품 번역과 비평에 평생을 바친 남자, 영국 추리 작가 아서 코난 도일에게 '셜록홈스'의 영감을 남긴 남자, 히라이 다로를 일본 추리소설의 아버지인 필명 에도가와 란포로 바꾼 남자. 에드거 앨런 포는 이렇게 국가와 인종을 뛰어넘어 영향을 끼친 천재 소설가이자 시인, 비평가다. 그러나 그가 가진 재능에 비해 포는 지독히 불행했다. 뮤지컬 '에드거 앨런 포'는 포가 남긴 작품들로 생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이 비운의 천재를 영원히 박제한다.

'에드거 앨런 포'(연출 노우성)는 천재적인 재능을 가졌으나 불우한 삶을 살았던 에드거 앨런 포의 일생을 그린 뮤지컬이다. 지난해 국내 초연된 뒤 1년 4개월 만에 재연으로 돌아왔다.

실제 에드거 앨런 포는 반전과 과학적인 추리로 인기를 모은 '모르그 가의 살인 사건'을 비롯해 잔인한 살인을 다룬 '함정과 진자', '검은 고양이' 등의 추리 소설과 '까마귀', '애너벨 리', '헬렌에게' 등의 시까지 남긴 작가다. 그러나 몇 안 되는 작품이 인정받기 전, 포의 생애는 한없이 불행했다. 불과 2세 때 어머니를 여읜 뒤 양부 손에 불행하게 자랐고, 17세 때 버지니아 대학교에 입학했지만 학비마저 제대로 못내 퇴학당했다. 집필 초창기 내놓은 시집은 연달아 문학계에서 외면 당했다. 1840년대 초반 단편 추리 소설들로 짧은 전성기를 구가한 그는 어린 아내 버지니아가 죽은 뒤 술에 취한 채 길을 떠돌다 의식불명인 채로 발견돼 생을 마감했다. 그의 사인은 1849년 사망 이래 아직까지 불분명하다.

이에 공연은 노우성 연출의 각색과 상상력으로 포의 인생을 재해석한다. 포의 라이벌 그리스월드, 첫사랑 엘마이라, 아내 버지니아와의 관계 그리고 문학에 대한 포의 집념이 이 천재의 불운하고 미스터리한 생애를 설명한다. 그중에서도 포를 깎아내리기 위해 모든 명예와 재력을 쏟아붓는 그리스월드의 악마성은 생전 모든 문학적 성과를 부정당하고 종국엔 객사한 포의 비극을 극대화한다. 초연에 이어 그리스월드 역을 맡은 정상윤은 특유의 단단한 저음으로 그리스월드의 지독함을 표현해 관객들을 포의 가련함에 몰입하게 한다.

또 병약해 일찍 죽은 버지니아는 마찬가지로 조졸한 포의 엄마 엘리자베스를 연상케 한다. 포는 그들을 그리워하며 내면의 순수함을 각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순수문학의 시적 영역을 추구한다. 더불어 포의 첫사랑이자 마지막까지 그를 품으려 한 엘마이라는 짧은 생애와 불행한 생애에도 그를 기쁘게 추억하는 후대의 독자들을 대표하며 공감대를 자아낸다.

다만, 포의 인생 전반부를 다룬 1막의 서사가 엘마이라, 그리스월드, 버지니아 등 주변 인물들과 포의 관계를 자연스럽게 연결하지 못하고 하나의 유기적인 공연이 아니라 각각의 에피소드처럼 따로 놀게 만드는 부분은 아쉬움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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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공연은 김성수 음악감독이 만진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로 포의 작품들을 공연 안에 녹여내며 서사의 빈 곳을 채운다. 일례로 '함정과 진자'는 포의 창작에 대한 고통을 마이너 한 음역대로 살린 넘버다. 이는 포의 대표 시 '까마귀'를 형상화한 무대 장치가 실제 진자처럼 움직이며 동명 소설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포의 미스터리한 죽음을 상상력으로 풀어낸 넘버 '널 심판해'에서는 그리스월드의 잔인한 설명 아래 단편 소설 '검은 고양이' 속 한 장면이 포를 덮쳐 객석을 경악으로 물들인다. 이 밖에도 퍼붓는 빗속에서 포만의 시상(詩想)을 형상화한 넘버 '매의 날개', 이번 공연부터 추가된 엘마이라의 솔로 넘버 '꿈속의 꿈' 등이 하나하나 포의 작품을 떠올리게 하며 그를 사랑한 독자이자 이 공연의 관객들을 전율케 한다.

이처럼 음악의 매력으로 이야기의 단점을 보완하는 '에드거 앨런 포'에서 정동하는 밴드 부활의 보컬 출신답게 차고 넘치는 무대 장악력과 가창력으로 넘버들을 소화한다. 그는 풍성한 성량과 호흡으로 긴 분량의 넘버도 가뿐하게 소화해 관객들을 공명하게 만든다. 특히 그는 유독 높은 음역대로 유명한 '에드거 앨런 포' 넘버들에서 독보적인 고음으로 빛을 발한다. 공연장 천장까지 꿰뚫을 것처럼 올라가면서도 흔들림 없는 정동하의 고음을 듣다 보면 연기를 전공하지 않아 다소 미흡했던 그의 대사들도 잊을 수 있을 정도. 더욱이 이는 노래로 포우의 작품을 빛내려는 '에드거 앨런 포'의 연출과 맞아떨어져 작품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결국 비운의 천재 작가 포우가 세상에 남긴 것은 그의 작품들이다. 평단과 대중이 외면한 와중에 가난에 시달리면서도 펜을 놓지 않았던 포의 집념은 그의 작품 안에 남아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에드거 앨런 포'는 그런 포의 작품들을 현대적인 음악으로 재해석하며 비운의 천재를 회상하고 위로한다. 살아서는 긴 시간 외면받았지만 죽어서는 더 긴 시간 회자되는 작품들로 영원히 기억되는 포이기에, 그의 작품들로 빼곡한 '에드거 앨런 포'는 포를 향한 160분의 추모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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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거 앨런 포'는 내년 2월 4일까지 서울시 강남구 신사동에 위치한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공연된다.

[티브이데일리 연휘선 기자 news@tvdaily.co.kr / 사진제공=쇼미디어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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