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의 얼굴 이정은의 또 다른 변신, ‘내가 죽던 날’ [인터뷰]
2020. 11.15(일) 11:15
내가 죽던 날, 이정은
내가 죽던 날, 이정은
[티브이데일리 김종은 기자] 영화 ‘기생충’의 문광부터 드라마 ‘한 번 다녀왔습니다’의 강초연까지. 짧은 시간 동안 천의 얼굴을 보여준 배우 이정은이 또 다른 변신에 나섰다. “어려운 역할이 더 끌리는 것 같다”는 이정은은 계속된 도전을 통해 쉼 없이 성장하고 있었다.

최근 이정은은 그야말로 대세 행보를 걷고 있다. 그 시작은 누가 뭐래도 ‘기생충’부터 일 테다. 대한민국 최초의 황금종려상 수상작 ‘기생충’에 출연해 대종상 영화제 여우조연상과 미국배우조합상 영화부문 캐스팅상 등을 품에 안았으니 말이다.

분명 주로 연극 무대에서만 활동하던 이정은의 일상은 ‘기생충’ 이후로 달라져 있었다. 이정은은 이런 인기에 힘입어 대규모 예산이 투입된 영화에 출연해 화제성을 이어갈 수 있었지만, 오히려 차기작으로 지상파 주말극을 선택해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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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은은 KBS2 ‘한 번 다녀왔습니다’에서 송영달(천호진)의 숨겨진 동생인 강초연 역으로 분했다. 이정은은 “사실 ‘한 번 다녀왔습니다’는 굉장히 오래전부터 양희승 작가님과 약속한 작품이었다. 작가님하고 친분을 쌓을 때 즈음, 작가님이 1인이 아닌 다인의 주인공을 배경으로 한, 배울 점이 많은 주말극이 하고 싶다고 하더라. 첫 작품에 내가 출연하겠다고 약속했는데, 그 기회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고 출연 비화를 밝혔다.

약속 때문에 한 출연이었지만, 이정은에게는 얻을 것이 더 많았던 작품이었다. 이정은은 “고민이 많았지만, 결과적으론 부모님이 워낙 좋아하셔서 좋았다. 또 ‘기생충’ 이후 마음이 붕 뜬 게 없지 않아 있었는데, ’한 번 다녀왔습니다’ 덕분에 감정을 추스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정은은 ‘한 번 다녀왔습니다’를 통해 겸손함도 배웠다면서 “계속해 유니크한 역할로 칭찬을 받으면서, 나도 모르게 모든 연기가 독특해졌다. 자연스럽지 않았다. 그래서 ‘한 번 다녀왔습니다’ 때에는 오히려 시청자분들이 내 연기가 평범하지 않은 것 같다고, 꾸며진 것 같다고 지적하시더라. 그때 너무 큰 충격을 받아 1주일은 어떻게 연기를 해야 하나 고민했던 것 같다. 지금은 아직 배워야 할 게 많다는 마음으로 연기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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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진지한 고민으로 캐릭터를 그려나간 덕에 이정은이 연기한 매 작품 속 역할들은 많은 시청자들의 ‘인생캐’로 등극했다. 앞서 볼 수 없던 이정은의 새로운 얼굴들이 각각의 작품 속에 담겨있었기 때문. 이정은은 ‘동백꽃 필 무렵’ ‘타인은 지옥이다’ 등에서도 자신만의 개성이 가득 담긴 캐릭터를 선보여 안방극장을 홀렸다.

그리고 이정은은 대중을 매료시킬 또 다른 도전에 임했다. 이번엔 말을 하지 못하는 역할이다. 이정은은 지난 12일 개봉한 영화 ‘내가 죽던 날’(감독 박지완·제작 오스카10스튜디오)에서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 순천댁 역을 맡았다.

먼저 “관객분들이 어떤 말들을 하실지 정말 궁금하다 다양한 층의 관객분들이 오셔서 봐주셨으면 좋겠다. 또 약간 생각할 수 있는 영화가 됐으면 좋겠다”고 개봉 소감을 전한 이정은은 “대사가 없는 역할은 분명 큰 도전이었다. 그간 대중분들이 사랑해 주신 역할은 주로 언어유희가 있던 캐릭터였지 않냐. 걱정이 컸지만 시도하려는 마음을 가졌다는 것 자체가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이정은이 ‘내가 죽던 날’을 선택한 이유도 특별했다. 이정은은 ‘내가 죽던 날’의 메시지가 좋았다며 “사실 제목을 처음 들었을 땐 ‘사랑의 블랙홀’처럼 로맨틱 코미디일 줄 알았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그냥 사람 사는 문제에 대한 이야기였다. 혜수 씨는 ‘깊은 위로’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작품이라고도 말했는데, 개인적으로 난 존재하는 것에 대한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기생충’이 쇼킹하게 공생의 문제를 지적했다면, 이번엔 좀 더 잠잠하게 공생의 문제를 건들지 않았나 싶다”고 밝혔다.

“사실 ‘내가 죽던 날’이 그간 제 출연작과는 달리 파워가 강하진 않아요. 오히려 잔잔하죠. 또 수면 아래의 감정을 관객분들이 느끼게 하는 데에는 많은 공과 시간이 들기 때문에 배우에게 있어 고민이 많이 되는 작품이기도 해요. 하지만 이런 결을 따라가는 작품들도 많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해 함께하고 싶어졌어요.”

또 “어려운 역할이 더 끌리는 부분도 있는 것 같다”는 이정은은 “감정 소모가 있는 연기가 어려운 건 당연하다. 그런 면에서 대본을 볼 때마다 감정 연기가 힘들겠다 싶어 손이 안 가는 작품도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감정적인 깊이를 신나게 표현하며 찍을 수 있는 작품도 있는 것 같다. 결국 내게 있어 도움이 안 되는 역할은 없는 것 같다. 어느 정도는 내 몸에 남아있지 않나 싶다. 때문에 어려워도 다양한 역할에 도전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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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 끝에 선택한 출연이었지만, 처음 도전하는 스타일의 캐릭터였던 만큼 어려움도 많을 수밖에 없었다. 이정은은 “감정적으로 힘들었다기보단, 캐릭터가 너무 이상적이라 고민을 했다. ‘내가 과연 순천댁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 계속해 던졌던 것 같다. 내면적으론 순천댁이 정말 일상적으로 보이게 하도록 노력했다. 제 나름대로 힘을 굉장히 많이 빼고, 두드러진 표현을 안 하려고 했다. 또 관객분들이 보셨을 때 ‘이정은’하면 기대하는 반전도 있을 터라, 그런 점을 안 보이게 하는 게 중요했다"고 설명했다.

이정은이 쏟은 고민 만큼 순천댁에게 배운 점도 있단다. 이정은은 “순천댁은 주변사람들이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순간들도 암담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인 것 같다. 또 그런 상황 속에서도 누군가에게 기회를 줄 수 있는 마음이 넓은 사람이었다. 이상적인 순천댁의 그런 면을 배우고 싶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정은이 생각하는 ‘좋은 배우’란 무엇일까. 이정은은 “좋은 배우란 잘 듣는 배우인 것 같다. 대중이건 동료의 말이건 잘 듣는 배우에게는 자연스레 눈이 간다. 그런 면에서 난 아직 ‘좋은 배우’는 아닌 것 같다”고 답했다.

“좋은 배우, 좋은 어른은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만큼 상대방의 뜻을 알게 되기까지 귀를 기울이고 기다려준다는 뜻이잖아요. 그런 면에서 전 개인적인 사람이에요. 이상적이지 않아요. 혼자 있는 시간이 많고, 그런 시간이 행복할 때도 있죠. 제 일이 바빠서 어려운 상황의 친구들을 돌아보지 못할 때도 많아요. 다만 할 수 있는 한 잘 들어주려, 제 나름대로 ‘좋은 배우’ ‘좋은 어른’이 되려 노력하고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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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브이데일리 김종은 기자 news@tvdaily.co.kr / 사진제공=워너브라더스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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